나뭇가지 줍는 여인
함명춘(咸明春)
한 여인이 땔감에 쓸 나뭇가지를 줍고 있다
평생 그 일을 해야 하는, 뼛속까지 천민인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녀의 주인이 죽어서
하지 않아도 되는 나뭇가지들을 줍는 여인을
아마도 땔감의 다른 용처가 있나 싶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가 땔감을 이고
언덕을 넘지 않는 날엔 노을이 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그랬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언덕 넘어가길 두려워했다 언덕 너머엔 아주 큰
아궁이가 있는데 그녀가 그곳에 군불을 지펴
해까지 피워 올리는 거라 믿었다
그녀가 언덕을 넘지 않는 일이 잦아져 갔다
그녀가 늙어가고 있는 줄 사람들은 까맣게 몰랐다
한 달을 넘게 해조차 뜨지 않고 있었다
해를 못 본 곡식과 과일들이 죽어갔고
그녀의 유일한 땔감 공급원인 마을 숲도 사라졌다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하나둘
마을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할 때
언덕 너머 노을이 다시 피고 천천히 해가 떠올랐다
과일도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녀가 절룩거리며
언덕을 넘는 걸 누군가 보았다고 했다 아주 큰
아궁이 속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와 유난히
손톱이 긴 타다 만 손가락들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시작노트_ 인도를 몇 번 간 적이 있다. 갈 때마다 다시는 안 가야지 하면서도 또 가게 된다. 세상에 그런 곳이 더는 없으리라. 그곳은 늘 익숙해지지 않으며 적응되지 않는다. 또 낯설며 고행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가게 된다. 꼭 시(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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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2016-5월호 <시>에서
* 함명춘(咸明春)/ 1966년 춘천 출생, 1991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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