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육식성, 시/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6. 2. 17. 20:21

 

 

    육식성, 시

     정숙자

 

                          그마저 새빨간 살을 먹어야 하다니,

                       꼬리 긴 신음 쬐어야만 꽃 피울 수 있다니,

                  그렇다면 내 어찌 마지막 한 줄기의 절규인들

                                       쾌히 감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떤 이가 걸어간 마지막 길은

   어떤 이가 끌고 갈 첫길이

   되기도 한다

 

   모든 죽음은 표절이다

 

   전쟁, 자살, 그보다 별난 외인사, 라 할지라도

   죽음은 죽은 자의 것도 남은 자의 것도 아닌

   저 너머 존재자의 미문美文이므로

 

   회색이든 검정이든 다른 뭣이든

 

   생존 또한 표절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인생에서 배운 건 인생이지만

   다 배우지 못한 것

   또한 인생이다

 

   동경과 침묵 속에서 마디마디

   자라나는 그마저 육식성이(었)다, 는

   베일veil 앞에서

 

   나는 흰 목과 푸른 목을 준비한다

   떠나온 곳으로 이어지는

   출생과 삶과 최후를

 

   표절부의 고리에 정중히 비끄러맨다

     -『시와표현』2016-2월호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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