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곡선
정숙자
실족 없다
온몸 뒤져도 굴절도 없다
두고 온 수족으로 거뜬히 비탈을 넘고 바람을 추월한다
절벽, 틈서리, 풀숲… 어디라도 스민다
돌출 없다
비늘 한 잎 덧대지 않았다
신은 저이를 만드는 데 유독 공들였을까?
맨 마지막에 구상했을까?
그런 만큼 '완벽'을 추구했을까?
엑스레이 찍는다면 이를 데 없이 촘촘한,
무수한,
질서정연한,
뼈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미세한,
가시들을 보여주겠지
바로 거기서 과잉곡선의 슬픔이 밝혀지겠지
(이브는 굳이 매혹되었을 것이다. 아담 역시 매개자가
없었다 해도, 저이가 직접 꼬였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그
흠잡을 데 없는 미끈함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신이 틔운 피가 어쩌다 독이 됐을까?
저이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이곳은 낙원이었을까?
매듭 없는 물결들이, 뒤엉킨 머리들이
허공마저 물어뜯고 옥죄어간다
-『시와표현』2016-2월호
* 과잉곡선: 저자의 신조어. 뱀의 보행을 형상화한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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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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