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결빙(結氷)의 아버지/ 이수익

검지 정숙자 2015. 10. 30. 14:51

 

 

    결빙(結氷)의 아버지

 

      이수익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는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주며

  늘 그런 기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월간문학』2015-11월호 <이 시대 문학의 향기>에서

  * 이수익/ 1942년 경남 함안 출생, 1963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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