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처럼 얼굴이
정채원
꿈결에 다리를 쭉 뻗으면
내 엄지발가락이 얼굴에 닿는다
재채기를 참으며 나는
벽장 속으로 숨는다
입을 막아도
내장과 뼈마디가 보인다
얼굴은 퇴로가 없는 발가락처럼
열 갈래로 꿈틀거리고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여다보다가
아무것도 꺼낼 게 없다는 얼굴로
다시 문을 닫고 돌아선다
목에서 가장 멀리 달아난 요요
얼굴은 무소속입니까, 운이 좋으면
밟히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품을 하다 기지개를 켜면
손끝에 젖은 얼굴이 닿는다
지척에 지천인 얼굴들
발에 채는 얼굴들
목과 진통제를 떠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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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2015- 여름, 가을호 합본 <신작시>에서
* 정채원/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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