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신진숙_ 신작 소시집 해설/ 직유 : 이영광

검지 정숙자 2015. 9. 19. 02:11

 

 

『불교문예』2015-가을호/ 신작 소시집 해설_ 신진숙 : 서정의 농업(발췌)

 

 

     직유

 

    이영광

 

 

  어떤 일 년은 사랑을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면서도

  사랑을 목마르게 찾아 헤매고

  하루살이가 노랗게 탔다.

  어떤 삼 년은 막 쏟아 부은 아스팔트처럼 구두에 들러붙어,

  디딜 곳도 갈 곳도 몰랐는데

  헤맴의 찬란 모름의 행복 가득 시간이

  매미처럼 쟁쟁 울었고,

  지금, 어떤 십 년은 지방(紙榜)같이 간략하고 절간 뒷간같이 공하고

  한 줄기 비행운이었다는 듯 등 뒤에 흩어진다.

  바람을 걸어와 희어진 인간은 인형 같고

  십 년씩 이십 년 씩 의혹 없이 요약되어

  인생은, 인생의 시놉시스 같다.

  시간은 동그랗게 말려 시계 속에서 돈다.

  길이 풍경을 뿌리치고 지도와

  내비게이션 속을 흘러가는 동안

  명백한 가을에서 명백한 가을로 구름 한 점 없이

  지구는 지구의처럼 돈다.

  사랑의 은유들은 땅 끝까지 몸을 숨기고

  말 대신 누가 불쑥 내미는 빈 자처럼 녹슨 칼처럼

  직유들이 몰려 온다.

                                   -전문-

 

 

  시인이 '직유'라고 일컬을 때, 그것은 비유이기 이전에 시인이 생각하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직유란 이것과 저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둘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이 존재하는 관계를 지칭한다. 사물은 지평선 위에 가지런히 모두 놓여 있다.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하지 않는다. 반면 사물의 깊이를 파고드는 것은 은유이다. 그것은 사물에 시간적 흐름과 공간적 깊이 모두를 부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지를 일구고 씨앗을 심어 그것이 성목(成木)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농업이다. (신진숙/ 문학평론가) 

 

 

  * 신진숙/ 2005년『유심』등단. 평론집 『윤리적인 유혹, 아름다움의 윤리』현재 경희대학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