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생애/ 강희근

검지 정숙자 2010. 12. 19. 01:15

 

    생애


    강희근



  한 시인의 생애를 시선집으로 읽다가

  생애가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생애가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시는 눈물이 아니라 그리움이 아니라

  불면까지 끓여내는

  솥이라는 걸 알았다


  시인은 제 맞춤형 솥 하나 걸어놓고

  비 내리는 날

  섞어치는 비, 빗방울 땔감으로 불 지피고


  눈 내리는 날

  진눈깨비 나뭇가지 치며 녹아내리는 물 땔감으로

  불 지폈다


  솥은 끓어서 눈물도 그리움도 다 끓어서

  시인은 제 손에 지닌 한 톨의 눈물 한 접시

  그리움도 없다


  나는 아침에 그 눈물 그 그리움

  솥단지 휘휘 저어가며, 뜨거워 조심스레

  한 숟갈 뜬다


  내 것 내 저민 것들도 들어 있는지, 김 오르는

  이랑 사이

  빙빙 저어가며 한 숟갈 뜬다



  *시집『새벽 통영』에서/ 2010.1.30 <도서출판 경남> 펴냄

  *강희근/ 경남 산청 출생,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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