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강희근
한 시인의 생애를 시선집으로 읽다가
생애가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생애가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시는 눈물이 아니라 그리움이 아니라
불면까지 끓여내는
솥이라는 걸 알았다
시인은 제 맞춤형 솥 하나 걸어놓고
비 내리는 날
섞어치는 비, 빗방울 땔감으로 불 지피고
눈 내리는 날
진눈깨비 나뭇가지 치며 녹아내리는 물 땔감으로
불 지폈다
솥은 끓어서 눈물도 그리움도 다 끓어서
시인은 제 손에 지닌 한 톨의 눈물 한 접시
그리움도 없다
나는 아침에 그 눈물 그 그리움
솥단지 휘휘 저어가며, 뜨거워 조심스레
한 숟갈 뜬다
내 것 내 저민 것들도 들어 있는지, 김 오르는
이랑 사이
빙빙 저어가며 한 숟갈 뜬다
*시집『새벽 통영』에서/ 2010.1.30 <도서출판 경남> 펴냄
*강희근/ 경남 산청 출생,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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