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허형만
나도 이미 칠십령 고개를 넘어섰는데
여전히 내 앞에서 그가 피우는 거드름은
한 치도 앞을 보여주지 않는 밤안개처럼 오만하다
거드름은 늘 안하무인을 거느리고 다니지
씹을수록 이가 아리는 통증 같은,
초상집 문턱에 서린 불온한 공기 같은,
오늘도 어느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거드름의 투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가급적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의 오만한 거드름이
나에겐 잘 닦인 거울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나는 눈을 감고
티베트 설산 어느 깊은 계곡에서 만났던
폭포수 아래 가부좌로 꿈쩍도 않는
푸른 소나무와 같은 나를, 그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이다
* 『예술가』2015-여름호 <예술가 신작시>에서
* 허형만/ 1973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욱한 믿음/ 최문자 (0) | 2015.06.19 |
---|---|
회벽/ 최현우 (0) | 2015.06.19 |
공중국가/ 박무웅 (0) | 2015.06.06 |
너무도 사소한 별에서 산다/ 이도훈 (0) | 2015.06.06 |
식은 아침/ 윤관영 (0) | 2015.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