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산문집 · 행복음자리표

우체국 · 매미 · 손편지/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5. 4. 23. 21:25

 

 

      우체국 · 매미 · 손편지

 

        정숙자

 

 

   보도블록 위에 매미 한 마리가 누워 있다. 엄지와 검지로 그를 줍는다. 발가락 두어 개가 간헐적으로 꼬물댄다. 땅에 떨어진 매미는 으레 죽어있기 마련이지만 얘는 아직 이승의 몸이다. 막 임종을 시작했는가보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나는 그를 손바닥 위에 눕힌다. 이제 비둘기가 채어가지도, 개미가 끌고 가지도, 구더기가 파먹지도 못할 것이다. 매미의 마지막을 돕기 위해 총총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를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발가락의 움직임이 점점 희미해진다. 7년 동안이나 땅 속에 묻혔다가 날개를 펼친 후 보름을 살고 가는 그. 불볕더위 속에 쏟아지던 수천수만 필의 매미 소리에 한 오라기 울음을 보태었을 그. 온몸에, 아니 발가락에 힘이 빠져 더는 나무에 붙어 있지 못하고 툭 떨어졌을 그. 그리도 그리웠던 하늘을 태양을 사랑을 힘껏 노래했던 그. 그가 보름 동안의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는 중이다. 겨우 15일이 전 생애였던 그 앞에서 나의 56년은, 아니 나의 남은 세월은 얼마나 무겁고 어처구니없고 구차한 숫자인가. 15일을, 혹은 15년을 살고 간다면 인간도 저리 투명한 마음속 날개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마침내 그의 발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수고 많았구나. 얘야! 수고 많았구나.’

 

   편지는 혼자 쓰는 것이지만 반드시 건너편에 사람이 있다. 건너편의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결―따뜻해진다. 그의 테이블과 찻잔을 상상하며 어휘를 고르고 문장을 가다듬는다. 그러므로 편지는 맑고 넉넉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나는 거의 평생을 편지와 함께 건너가고 있다. 문인이 되기 전에는 부모형제, 친척,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했고 요즘은 보내온 책들을 읽고 노트를 마치면 곧바로 회답을 쓴다. 날이 갈수록 들어오는 책이 많아 대부분의 시간을 편지에 할애한다. 이제 내 생활 속에서 편지는 낭만이나 예의가 아니라 규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규칙을 사랑한다. 일평생 수행해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든든하고 유익한 일인지 혹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회답을 쓸 때마다 나는 생각해왔다. 건너편의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거라고, 시간을 선사하는 거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에 대한 보답이리라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긴장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한 통의 편지를 쓰려면 우선 보내온 책을 충실히 읽어야 하고, 부지런히 움직여 시간을 짜야 하고, 옷깃을 여미고 앉아 바른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 꼼꼼한 긴장들이 매순간의 탄력을 도와 방전되기 쉬운 인욕-정진을 조금이나마 수호해 주었던 게 아닌가. 

 

   긴장은 나태로부터의 이탈이다. 게으른 자는 좀체 긴장하지 않는다. 적당한 긴장은 동력을 유발하고 신선미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현실 세계에서의 정체가 예방되며 마음과 정신의 진화가 추진된다. 여기서 말하는 긴장은 수직적으로 급상승했다가 금세 와해되어버리는 부류가 아니라 꾸준히 자아를 편달―발전시킬 수 있는 양질의 채근이다. 그런 긴장은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이로움을 주고, 가정과 사회에도 발랄함과 온기를 보탠다. 긴장은 꿈을 향해 길 떠나는 자의 첫 번째 티켓이며 맨 나중까지 잃지 말아야 할 코드이다. 긴장이 없고서는 열정과 소신도 유지할 수 없다. 그와 같이 소중한 긴장의 효용성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돌이켜보니 여태까지 나를 키운 건 끊임없는 긴장의 탄력이었다. 매순간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할 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버스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 책을 읽거나 글을 지을 때, 가스렌지를 켜거나 음식을 먹을 때 등등 하 많은 긴장들이 나를 안전지대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을 좀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긴장, 즉 나만의 고유한 긴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심장에 숨겨진 최소단위의 자가발전소이며 송전탑이 되어주리니, 알맞은 긴장은 무한의 힘을 밀어 올린다.

 

   금년 1월. 뜻밖의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그 편지의 빛이 얼마나 넉넉했는지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행복감에 싸였다. 1925년 함경북도 종성 출생. 1948년 『예술조선』으로 데뷔. 그러니까 올해로 등단 60주년, 83세의 김규동 시인. 그에게서 받은 한 점의 문향은 내게 도착된 우편물 가운데 최고령자의 손편지였다. 편지전용 가위로 겉봉을 따고 속지를 꺼내자 Blue/Black 잉크의 만년필로 써내려간 글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A4용지에 시원시원 ․ 반듯반듯 인의와 예지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노 시인의 여윈 손끝에서 어쩌면 이리도 결곡한 필세가 흐트러짐 없이 피어날 수 있을까 황홀하고 존경스러웠다. 여기 내용만이라도 소개하련다. “정숙자 여사께// 연하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새해에는 기쁨이 많으시기를 빕니다. 저의 졸작시를 또박또박 적으신 글씨가 너무 정성스러워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시를 많이 쓰십시오. 많이 쓰면 절로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겠지요. 시인이란 그저 끝없이 쓰는 사람이겠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 쓸쓸하기도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여놓은 일을 간단히 걷어치울 수는 없는 일이외다./ 사람의 삶이 다 그러하지 않습니까. 정 여사, 많이 쓰셔서 책 한권 더 내십시오. 그때에는 출판기념회 하고 저도 불러주십시오./ 건필을 기원합니다./ 2008.1.10./ 규동 배. 

 

   이왕에 김규동 시인의 편지를 공개했으니 내가 “또박또박”적어 보냈던 시 한 편도 읽어보자. “이 손/ 더러우면/ 그 아침/ 못 맞으리// 내 넋/ 흐리우면/ 그 하늘/ 쳐다 못 보리// 반백년 고행길 걸은/ 형제의 마디 굵은 손/ 잡지 못하리// 내 넋/ 흐리우면/ 아, 그것은/ 영원한 죽음.” (『느릅나무에게-김규동 시집』「아, 통일」-전문) 조국 분단은 국사 이전에 개인의 슬픔이다.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한 바 있는 김규동 시인! 그에게 있어 시를 쓴다는 것은 통일의 염원(혈육과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내포하는 것이었으리라. 통일은 그의 숙원이며 변할 수 없는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던 것이다. 그 바람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이 손 더러우면… 내 넋 흐리우면… 형제의 마디 굵은 손 잡지 못”할 거라고 “그 아침… 그 하늘 쳐다 못”볼 거라고 “영원한 죽음”이라고 다짐했겠는가. 편지 한 장에 담긴 그의 글씨와 마음은 단순의례 차원을 넘어 숙련된 긴장의 향기였다. 어떤 경우에도 공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결실이란 없다. 만일 공짜로 생긴 기쁨이 있다면 그 행복을 간직하기 위해 공덕을 쌓아야 한다. 경위가 그와 같지 않다면 우연히 습득한 그 보배는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가슴에 ‘고독’이라는 딱지와 함께 흉터를 남기고 떠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새로 나온 우표 한 판을 사왔다. 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이었던 김시철 선생의 말씀을 들은 뒤로 생겨난 취미다. “시인은 우표 한 장도 남달라야 해요. 당장 사 붙여서는 안돼요. 미리미리 사 두었다가 그 우표가 판매 창구에서 사라졌을 때 사용해야 해요.” 참으로 아름다운 이치였다. 십수 년 전이었던 그때부터 나는 새로 나온 우표가 눈에 띌 때마다 한두 판을 구입해 상자에 보관해오고 있다. 그렇게 자잘한 하나하나를 챙기는 것은 남모르는 데생이다. 헌 종이로 봉투를 만들고, 일회성 전단지의 그림들로 편지지를 장식하고, 몇 해씩 묵은 우표이기에 10 ․ 20 ․ 30원짜리 우표를 잇대어 붙이고…. 이런 행위들이 나에게는 즐거운 긴장이다. 너무 하찮기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아무렇게 하더라도 큰일 날 리 없는, 현실적으로 한 푼의 이익도 돌아오지 않는…. 그러나 늘 정신 세우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그 일상의 반복에서 나는 ‘긴장의 탄력’이라는 사금을 캤다. 한없이 외로운 문단에서 권태를 다스리거나 절망을 돌려보낼 수 있었던 의지도 그 사소한 긴장감에 힘입었던 것이다. 제2의 뇌라고 일컫는 손을 움직여 뭔가를 만들고 구상하며 시간을 방치하지 않는 일. 내 브레인은 앞으로도 그 쪼잔한 긴장을 위해 성실을 기할 것이다.

 

   우체국 길에서 주워온 매미로 인해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어쨌든 우리 아파트는 몹시 낡았고, 그와 반비례로 나무들은 나날이 품새가 높아간다. 매미 역시 나무와 한 동아리이니 해마다 개체수가 불어나리라. 고맙고도 푸른 섭리이다. 매미들의 합창에 눈뜨는 아침! 자정을 지나도 들려오던 그 똘똘한 소리! 이제 여름은 갔지만 나에게 임종을 허락해준 매미가 아직도 책상 위에 어여쁘다. 그의 가슴엔 별 하나가 떠 있다. 이리저리 접힌 채 멈춘 여섯 개의 다리가 별 모양으로 굳은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별을 마음에 품고 눈감았을까. 알아주는 이 없었지만 그의 생애는 완벽했다. 7년 동안의 어둠을 잘 견뎠기에 날개를 달 수 있었고, 지혜로이 긴장하고 사랑했기에 몸을 보전했을 것이며,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땅에 떨어져 나 같은 이에게 영감까지를 안겨주었다. 그는 분명 사랑에도 성공하여 땅속 어딘가에 후손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서릿발이 솟기 전에 그를 묻어주리라. 기온이 너무 내려가면 육탈이 어려울 터이므로. …나도 사후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의 죽음을 모르는 시인들이 간혹 시집을 보내올 때, 그때 내 딸 수경이가 대신 회답을 보내줄 수는 없을까? 그리고 그때 나는, 이승과 저승의 아스라한 경계를 슬퍼하게 되지는 않을까? 

 

                                                                            2008.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