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과 고양이
정숙자
남편이 먹은 푸조기 3/4
35년을 함께 살고도 배우자와 나는 왜 이렇게 뜻이 안 맞는 걸까. 혹여 의도적으로 엇박자를 매기는 건 아닐까. 내 언젯적부터의 생활관인데 번번이! 극구! 흔들며 말리려 들까. 타인에게 폐 되지 않는 행위를 왜 그리 ‘못볼세’ 할까.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며칠 전 언니가 준 푸조기 여섯 마리를 냉동실에 두었다가 구워 먹었다. 어제 저녁에 두 마리, 아침에 또 두 마리. 도합 네 마리의 척추와 대가리를 영산홍 아래 갖다 놓으려는데 마치 자신의 사타구니에 붙은 도꼬마리 씨라도 떼어내려는 듯 반대의 눈총으로 조준하고 나선 것이다.
내용인즉 이렇다. 재작년부터 아파트 공원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개체수가 불어나니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또는 “개체수가 불어나니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보편적 도덕률이라고는 거의 나 몰라라 하는 배우자가 어찌 그 야멸친 구호에는 환호작약하는지 미적분보다도 풀기 어려운 속내다. 설령 그 슬로건이 이해된다손 치더라도 내가 매 끼를 차려주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생기는 지스러기를 놔줄 뿐인데 왜 한사코 말리는가 말이다. 당국에서도 매한가지. 개체수가 문제라면 좀더 진화된 방법을 연구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뭐 내가 뜨거운 고양이 애호가는 아니다. 다만 한 동네 살면서 그만한 우정쯤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만한 사이쯤이야 천지를 장악하고 쥐락펴락 휘두르는 인간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윤리가 아닐까 여길 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도둑고양이’라고 못 박아버린 칭호도 참 미안한 일이다. 인간만 아니라면 그들도 신이 내린 먹이사슬을 떳떳이 사냥하며 여유를 구가했을 것이다. 터전에 밀리고 자동차에 치이고 겨우 인간들의 쓰레기통이나 기웃거리며 종족을 보존하려 애쓰는 그들에게 우린 정말 솔기 없이 무정하지 아니한가.
섣불리 배신하지 않는 도둑고양이
졸음 요요한 봄날이면 영산홍 아래 엎드린 고양이가 나를 보고도 태연자약 달아나지 않는다. 음식쓰레기를 다 묻을 때까지 느긋이 바라본다. 나로서는 고양이의 그런 자존심이 싫지 않다. 아니, 좀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싫기는커녕 신비롭고 다정하고 고맙고 기쁠 따름이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나’의 관심을 믿어주는가 싶기 때문이다. 딴은 무한 외로움에 싸인 한 인간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한낱 도둑고양이의 신뢰를 이리도 따뜻이 간직하다니! 8~9년 전 이맘때 묻어줬던 고양이(첫 번째 고양이)를 따라가 그날의 추억을 되살려볼까.
목덜미에만 흰털이 났던 검은고양이(이하 ‘그’로 약칭)! 우리 집은 아파트 3층이지만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런데 내 왼쪽 무릎은 연골이 찢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국물에서 건져낸 멸치라든가, 너무 두꺼워서 걷어낸 돼지비계, 닭 껍질 층에 쌓인 기름 등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게 나오면 무릎 통증을 불사하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배고픔은 추울수록 더 큰 고통일 터이기에 특히나 겨울밤이면 익일 아침으로 미루지 않는다. 후각 예민한 그들이 바로 달려와 입맛 다실 수 있게…, 한 입 거리라도 요기하고 잠들 수 있게….
이제 약칭 ‘그’에 대한 회상으로의 본격진입이다. 내가 ‘그’를 따로 사랑했던 건 아니다. 꽃밭을 드나드는 여러 고양이 중 하나였을 뿐. 그리고 나는 여느 고양이와 마주치더라도 대개 마음속으로만 말을 건넨다. 소리 내어 안부를 묻거나 한다는 게 왠지 객쩍고 쑥스럽다. 그런데도 유독 ‘그’를 기억하는 까닭은 모색이 튀어났기 때문이다. 몸집도 여느 고양이에 비해 컸을 뿐 아니라 후다닥 나타나거나, 제 길을 가다가 뒤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영산홍 그늘에서의 자존심형 포즈는 취한 적 없다.
나에게 의탁한 마지막 밤과 숨
그의 주검을 수습하던 날은 눈이라도 내릴 듯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날 아침 나는 외출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무심코 꽃밭을 지나치려는 찰나 추레해진 분꽃나무 사이로 검정비닐봉지 뭉치가 언뜻 눈에 띄었다. ‘누가 또 쓰레기를 버렸지?’ 생각하며 허리를 구부렸다. 그러나 그 뭉치에 손을 대기도 전에 흠칫 물러서고 말았다. 검정 뭉치는 누군가 내버린-내가 다시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말없이 교감해온 친구, 바로 ‘그’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외출을 포기했다. 차마 그를 컨테이너에 던져지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으므로.
다행히 타인과의 약속이 아니라 혼자의 외출이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집에 돌아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고무장갑을 끼고, 신문지 두어 장과 호미를 들고 내려갔다. 그는 이미 옆으로 누워 사지를 쭉 뻗은 채 뻣뻣이 굳어 있었다. 비록 하찮은 동물이지만 시체를 만지는 일은 몹시 두렵고 떨렸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선동하여 제비를 묻어준 경험은 있지만 정말이지 그렇게 큰 주검과의 일대일 접촉은 처음이었다. 측은지심도 뒷전, 일단 이 버거운 일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에 몰두했다. 묏자리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
평소 그가 자유로이 지나다녔음직한 곳에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는 주검을 신문지로 염했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민얼굴 위로 곧장 흙을 뿌릴 수는 없는 일! 그를 남향으로 뉜 다음 ‘편히 잠들기를…’ 경건히 헌토했다. 봉분은 없는 평장이었다. 거긴 내가 국화를 퍼뜨린 공지였는데 햇빛이 잘 들어 포근한 땅이다. 누구든 무심결에 그를 밟지 않도록 잔돌들을 둘러 꽂았으며 소주 한 병을 사다가 주변에 붓고 넋을 위로키도 했다. 그로부터 나는 삶이 팍팍할 때마다, 지독한 현실이 출렁거릴 때마다 그를 찾아가 울음을 참고는 했다—한다.
어느 시인이 선사한 새 이름 ‘자유묘自由猫’
어둡고도 철없던 과거. 조문객으로서의 나의 기도는 ‘내세에는 극락으로’ 또는 ‘내세에는 더 좋은 곳에’ 정도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런 기도는 당사자의 뜻이 무시된 나 자신의 주관적 견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실로 다음 생이 있다면 그 기회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가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고양이는 고양이로, 모기 역시 또 모기로 태어나고 싶을지도 모르는 일. 왜 꼭 ‘천국’이나 ‘사람’으로 재생하기를 빌어줬을까. 천국보다 이승이, 인간보다 다른 생명체가 더 낫다고 여기는 영혼이 있으리라는 걸 왜 유추하지 못했을까.
하여 ‘그’를 위한 기도는 예전과 달랐다. ‘네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몸으로 재생하기를, 만일 소멸을 원한다면 그 또한 이루어지기를….’ 그 후 나의 모든 조의는 그와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그를 묻고 돌아오다 보니 여러 고양이가 영산홍 아래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말해줬다. “너희들 친구 저쪽에 묻었다. 가 보거라.” 그들은 알았다는 듯 줄줄이 그쪽으로 뛰었다. 야릇하고 묘했다. 혹 내가 묻어주기를 바라며, 혹 내가 묻어줄 것을 믿고 그는 내 눈에 띌만한 길섶에 마지막 밤을 뉘었던 걸까?
도둑고양이조차 나를 알거늘 어찌 한 지붕 아래 동고동락한 배우자가 먹통이란 말이냐. 관계부처에도 감히 한마디! 인구가 과다하면 산아제한으로써 균형을 잡는 이치를 무슨 연유로 적용치 않고 굶기기 작전이란 말인가. 연간 예산을 잘 편성하면 암수 어느 쪽이든 불임수술로 해결할 수 있으련만. 서울 한복판에서 어린 손녀에게 탄성을 지르며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곤 그나마 ‘자유묘’―오시영 시인의 신조어와 비둘기뿐이건만! 비둘기 개체수가 염려된다면 그 또한 일정기간 수렵을 허할지언정 어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야만적 발상을 펼 수 있으랴.
200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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