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산문집 · 행복음자리표

아카식레코드(Akashic Records:우주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싶은 추억-3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5. 4. 19. 18:50

 

 

      아카식레코드(Akashic Records:우주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싶은 추억-3 

 

         정숙자

 

 

   책 읽기보다 쉽고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머리맡에 쌓인 책들 차분히 읽어볼 시간이 주어진다면 작히나 다복할까. 언제부턴가 분주해진 나의 일상은 쉽고 ‘즐겁고’ 유익한 생활로부터 자꾸만 멀어져간다. 책 읽는 자에게는 여러 단계의 기쁨이 있으니 그 첫째가 사고 싶은 책을 책 속에서 발견하여 수첩에 적어 넣을 때요, 다음은 목적한 도서를 살 수 있는 돈과 시간이 마련되었을 때이며, 세 번째로는 서점에 들러 그 책을 사들고 돌아올 때의 뿌듯함이 그것이다. 새 동료가 된 책을 품고 바라보는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푸를 뿐 아니라 채워지지 않던 마음 한구석까지도 든든하고 따뜻해진다. 어떤 장신구와 의복을 산들 이보다 더 충만할까 보냐.

   뇌의 필수영양소는 산소, 단백질, 포도당이라고 한다. 거기에 독서라는 정신적 유산소운동을 추가시키면 어떨까. 책이야말로 뇌 활성화를 위한 자양분이 아닐까. 책은 최저가격으로 역사와 지리, 문화와 상식의 견문을 넓혀줌은 물론 지혜와 상상력까지도 나날이 새롭게 열어주며 인간됨을 일깨워준다. 한쪽 팔에 책을 안고 걸어가는 여학생들, 겨드랑이에 한두 권 책을 끼고 헐렁헐렁 걸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클래식미래파의 전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젊은이라면 MP3보다는 단연 책을 선호하리라. 설령 뮤지션이 소망인 사람이라 해도 꼭 알아야 할 내용이 책 속에 아로새겨져 있을 터이니.

 

   하지만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판매가 부진하면 서점가에서 이내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점찍은 책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즉시즉시 구입해놔야 한다. 당장 읽을 수 없더라도 희망을 확보하는 격이니 결코 손해되는 일이 아니다. 책을 일컬어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던가. 양서를 구투는 일은 곳간에 먹을거리를 들이는 성실성과 진배없으니 그 앞에 다가서기만 해도 뿌듯해진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매양 뜻과 같이 전개될 수만은 없는 법.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를 놓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 역시 제때에 구해놓지 못해 애태운 책이 있었는데 그 제목인즉 『플루타크 영웅전』이었다. 요즘에 비해 1980년대에는 전집류가 꽤나 풍성했다.

   결혼 후 빠듯한 살림 속에서 나는 매월 쌀→연탄→책 순으로 가계부를 작성하곤 했다. 단번에 전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고(그 시절엔 신용카드도 없었으므로) 한 달에 한 권씩 매입함으로써 한 질을 채워나갔다. 그 시절 그렇게 읽고 소장한 책으로는 셰익스피어 전집, 도스또옙스끼 전집, 쌩떽쥐베리 전집, 아라비안나이트 전집 등이 있고, 한국고전문학대계와 화엄경, 성경, 중국의 옛 책 등이 구비되었다. 세계문학전집과 사상집은 분량이 하 방대함으로 더러더러 빠진 번호가 있지만 세계 각국의 시집들과 기타 서적들도 내가 걸어온 세월과 함께 지금껏 누옥을 지켜주고 있다. 그런데 『플루타크 영웅전』과 『삼국지』에 매혹되지 않은 까닭이 뭣이었을까.

 

   곰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 유년의 고향집 벽장에 박혀 있던 『아서왕 이야기』를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연유였다. ‘싸움=전쟁=잔인’의 선입견이 은연중에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온 세상이 상찬하는 책이지만 굳이 읽으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편향은 지속되어 천하의 병서들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늦게나마 『플루타크 영웅전』을 읽고 싶어진 근거는, 그 책에서 발췌된 인용구들을 여기저기서 빈번히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세월의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어찌된 영문인지『플루타크 영웅전』을 펴낸 출판사마저 영 통신두절이었다. 그런저런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딸 수경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플루타크 영웅전』구했어요.” “어디서? 어떻게?” “여긴 청계천 헌 책방이에요. 헌 책방가를 죽 더듬었더니 한 질이 있었어요.” “그래? 몇 권이니?” “여섯 권이고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건데 맞아요?” “그래, 그래” “엄마, 이 책 지금 가지러 오실 수 있어요?” “그럼, 가고말고!” “지하철 명동 역으로 오세요.” 나는 외투자락을 여미고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그 하늘엔 모처럼 눈발이 날렸고, 수경이 아기를 가진 지 얼마 안 되었던 터라 친정어미로서의 내 마음은 담쏙 은총에 싸인 듯했다. 일기장을 넘겨보니 2003년1월18일. 그러니까 6년 전 꼭 이맘때였다. 기억이란 어찌 이리도 제 계절에 꼭 맞춰 돌아오는 그림일까.

 

   반보기로 만난 수경과 나는 『플루타크 영웅전』을 기념키 위해 명동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기다림 속에 임신한 딸이 대견스러운 데다가, 무엇이 진정한 선물인가를 알고 노력해 준 마음 씀씀이가 그지없이 기특했다. 부유하진 않지만 끼니 굶지 않을 만하고, 육신이 건강하여 읽고 쓸 만하고, 유야랑(遊冶朗)인 남편 곁에서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그 순간을 맞이했으니 어찌 감동치 않을 수 있었으랴. 어렵사리 책을 구해준 이면에는 내 지난한 삶을 세세히 아는 자식으로서의 연민과 애정이 깃들었을 것이기에, …내면 깊숙이 눈물이 어른거렸다. 우린 『플루타크 영웅전』을 진짜 영웅 대접하며 포크커틀릿(pork cutlet)을 주문했다. 맥주도 한 잔 기울였던 것 같다.

   혹시라도 상할세라 한 권 한 권 비닐커버를 씌워 애지중지 책장에 얹었지만, …입때껏 전집은 고사하고 한 권도 다 읽어내지 못한 상태다. 첫 권에서 「플루타크」, 「테쎄우스」, 「로무르스」,「테쎄우스와 로무르스의 비교」를 읽었(2004.3.2.14:20)을 뿐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창작에 몰두했고, 전문서적 읽기에 더 급급했고, 아지 못할 분주함에 휘둘리며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먹었지만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잡히지 않았다—않는다.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이 어디 그뿐이리오. 두툼두툼 매혹적인 책들이 해마다 늘어간다. ‘젊은 친구여, 고전을 읽어두세요’ 권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계바늘이 숨 가쁘게 돌아갈 테니 말이다. 

  

   책 읽기는 타인에게 폐 되지 않고 자신에게는 가치이지만, 그 역시 행복의 범주이기에 지속적으로 누릴 수는 없는가보다. 청춘에 읽었던 몇 권의 책이 아니었다면 내 영혼이 얼마나 더 헐겁고 초췌했을까. 나는 나의 사회가 눈코 뜰 새 없이 번쩍거리는 걸 원치 않는다. 하루하루 꼼꼼히 살며 지인들을 그리워하며 해마다 1월이 오면 주소록을 들춰 연하장쯤 챙길 수 있는, 이제까지의 평온과 조촐한 리듬을—한미함을 사랑한다. 무한공상 속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밀린 책들을 느긋이 펼쳐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인생은 길지 않으니 어린 후손들을 만나는 일 또한 읽고 쓰는 것 못지않게 소중하리라.

   나는 한 생을 바쳐 책과 시(詩)를 사랑했으나 알아갈수록 글쓰기보다 어렵고 또 어려운 노릇은 없는 듯하다. 창작만이 어려운 게 아니라 주위와의 관계는 더욱더 난감하다. 내가 문인세계에 발을 묻은 것은 책 읽기를 ‘즐긴 죄 값’이 아닐는지. …우주 어딘가에는 아카식레코드가 존재한다고 한다. 아카식레코드에는 강가에 앉아 흘려보낸 혼잣말까지도 수록되어 있다던가! 그 레코드를 열면 지난 순간순간을 실시간대로 체험할 수 있다 들었다. 소음과 냄새, 공기, 색채 등 모든 정황이 현재형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아카식레코드 열람 능력이 생긴다면 『플루타크 영웅전』을 영접하던 페이지를 찾아보고 싶다. 우리 딸 풋풋했던 얼굴도 보고 싶고, 그날의 길과 바람—눈 냄새도 맡아보고 싶다. 

 

   에필로그) 내 이 세상을 떠날 때 잊지 못할 세 가지를 꼽으라면 아름다운 대자연과 피붙이에게 좀더 부어주지 못한 사랑,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이라고 답하련다. 펴보지 못한 책들에게는 미안함이 더할 것이다. 내 손 아니었던들 어느 선비의 책상에서 빛을 발했을 것 아닌가. 정말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면 지난 날 감명 깊었던 책들도 재독해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 꿈은 너무나도 찬란한 욕심이리라. 이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만만분의 일도 섭렵하지 못하고 눈감을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운하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 시시각각 태어나는 책들을, 미래의 명작을 위하여 파이팅!

   아참, 잊을 뻔했다. 책이란 ‘빌려주면’ 훼손되기 쉽고 돌아오기 어렵다. ‘빌려보면’ 밑줄 칠 수 없고 훗날 생각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앞사람이 그어놓은 밑줄이나 얼룩이라도 만날라치면 공연히 그 대목에 마음 쓰이고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적 교란이 생긴다. 하므로 나는 가급적 빌려주지 않고 빌려 읽지 않는다. 새 책으로 읽고 간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음식과 옷을 줄이되 책값에는 내핍을 가하지 않으니 그 책을 살 돈이 없다면 아예 그 책 읽기를 포기하는 편이다. 다시 뒤져 봐야 할 경우 그 책이 내 서고에 없다면 답답증과 황량함이 어둠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때문이었다.

 

                   

                                                                         2009.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