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식레코드(Akashic Records:우주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싶은 추억-1
정숙자
<주소를 묻지도 않고 어찌 예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전 지금 그와 함께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꾸었지만 정작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학수고대했던 그가 온 것입니다. 멀리서, 분명 아주아주 먼 데서 왔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고운 모습일까요. 혹 잘못 찾아온 길은 아닐까요. 그로 인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가 마술을 부렸을까요. 올 때와도 같이 그는 소리 없이 물론 예고도 없이 떠나가겠지요. 기다리는 사람이 하 많아 여기 오래 머무를 순 없겠지요. 어느 순간 제가 그를 잊어버리고 다시 슬픔에 갇히게 될 때, 그때를 위해 오늘 (충분히) 바라보려 합니다. 눈만 감으면 언제든지 그의 빛에 싸일 수 있게끔 흠~뻑 젖어들 생각입니다. 그의 이름은 불행의 동생, 행복입니다.>
이기론(理氣論)으로 비추어 볼 때 행복은 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불변의 것이 아닐뿐더러 외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형체가 없음에도 살아 움직이는 까닭에 광속보다 빨리 이동하고 문득 생겨나며 쉬이 소멸한다. 우리는 그 신기루를 접하기 위해 일하고 숙고하고 기도를 이어간다. 하지만 거기 쉽사리 당도할 수도 진입할 수도 없다. 오매불망 간구하는 이보다 의식조차 하지 않는—하지 못하는 심연에 자리하는 게 바로 행복인 까닭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 지나가버리는 행복을 과연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불행을 불행해 할 겨를도 없이 고통에 내몰렸던—내몰리는 시간들! 행복이란 그 분/초의 쪼가리들이 승화된 그림으로 맞춰질 때 잠시 얼비치는 지그소퍼즐(jigsaw puzzle)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행복을 안다. 현재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과거에 스쳤던, 또는 미래에 재회할 것만 같은 그 환한 등롱에 기대어 무제한적인 고통을 감내한다. 지나간 행복이나 다가올 ‘어느 날’의 행복이 아니라면 난데없이 물밀어오는 현실의 아픔을 그 어디에 팔 수 있단 말인가. 행복 역시 ‘신’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유(有)’를 믿는 편이 우리에게 유익이리라. 그 이익은 세금을 요구하거나 헌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느끼는 만큼 내 것이며 누구에게도 빼앗길 리 없고 불변의 힘이 되어준다. 이 땅에 태어나 나이 먹은-나이 먹는 사람치고 되돌아볼 행복 몇 컷쯤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 장면이 실재했다는 것과 그 시공을 회상할 수 있는 타이밍만으로도 가끔은 상큼 발랄한 Bravo를 띄워야 하리라.
이슬은 액체로 된 보석이요, 눈(雪)은 액체가 될 꽃이다. 내 고향 김제벌, 그 푸른 들판에 쏟아져 내린 만 섬 이슬은 어느 선녀가 잘못 엎지른 보석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토록 영롱하고 가냘프단 말인가. 태양이 동쪽 하늘을 차고 오르면 밤새 맺힌 이슬들도 일제히 깃을 가다듬었다. 논밭 가득한 그 이슬 알갱이들이 한꺼번에 날개를 폈을 때, 나는 날카로운 햇살의 아름다움을 읽고는 했다. 그러니까 초록바다를 이룬 곡초(穀草)들은 아침마다 선녀의 장신구를 패용하며 자랐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휘감고 나타난다 한들 그 아침의 한 줄기 식물에 비하랴. 내 어릴 적 시린 손을 비비며 뛰놀았던 곳. 사뿐사뿐 날아 내리던 눈송이 또한 이슬 못지않은 섬광이요 보석이며 꽃잎이었다.
빨강 비단치마에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색동저고리를 입고 아버지 따라 성묘 가던 명절날 아침은 내 삶에 으뜸 빛나는 천국이었다. 어머니는 부엌의 음식을 연신 방으로 들이시고, 아버지는 그 음식들을 정성껏 차례상에 진설하는 것이었다. 지방을 붙인 다음 오래된 떼끼칼로 묵은 향나무 토막을 저며 향을 올리면 우리 집은 그대로 성전이 되고는 했다. 두 언니와 동생과 나는 세수하고 머리 빗고 진솔옷 빼어 입고, 아버지 뒷줄에 서서 절을 올렸다. 벽장에 넣어두고 몇 날 며칠 만져보기만 하던 새 신을 꺼내 신는 날도 으레 그 아침이었다. 걸음걸음 옷고름을 갖고 노는 바람결도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이었다. 논길 밭길 방죽길엔 모처럼 노동이 지워지고 차려입은 성묘객들로 화려함이 무늬 놓였다.
내가 고니를 처음 본 날도 어느 해 설이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아버지의 무명두루마기는 언제나 향긋/경건했다. 동네 어른들과 간간히 수인사를 주고받으며 앞서 걸으시는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든든하고 멋졌다. 그 무렵 내 나이는 한 자리 숫자였으니 더 바라거나 부족한 게 무엇이었으랴. 텃논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완만히 솟구친 방죽길에 올라서면 거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빨랫줄과 감나무 사이에서 지저귀는 제비/참새와는 달리 우아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새를 가리키며 “고니란다.” 일러주시던 아버지. 그때 이미 나는 ‘백조’보다 ‘고니’라는 명사를 우위에 새겼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아직 부서지지 않았던 나의 행복도 이슬이나 눈, 나비와 풀꽃에 섞인 한 점 보석이었는지 모른다.
먹어야 산다는 거, 그거 문제다. 먹어야 산다는 거, 그건 즉 남을 먹어야 한다는—산다는 것이다. 아니아니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먹게끔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빌딩, 백화점, 푸줏간, 문방구, 도서관, 자동차…. 그 모두 먹고 살기 위해 문을 여닫고 불을 밝힌다. 지구상에 만들어진 문이란 문은 하나같이 먹이를 위해 쳐놓은 그물망이 아니던가. 액체보석-이슬과, 액체조각-눈꽃이 아름다운 이유도 아하! 그들은 먹지 않는다는 거였다. 뿐이랴. 어둠 깊숙이 반짝이는 뭇별마저 우리를 먹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부여된다. ‘門’字를 뜯어보면 두 개의 뜰채를 세워놓은 형상이다. 어쩌랴, 두 개의 뜰채는 대치상태의 상징이며 누가 누구를 먼저 겨냥하든 먹고 먹힐 거라는 이미지인 것을.
어쨌든 내 인생에서 최초로 관심을 가졌던 동물은 백조다. 아버지로부터 ‘고니’에 대한 생태를 전해들은 영향이었으리라. 봄이 오면 떠난다는, 추운 고장만 찾아다닌다는 그 점이 내 두뇌를 혼란시켰던 것이다. 도대체 왜 겨울에서 겨울로 이동하는 걸까. 그들은 춥지 않을까? 먹이가 부족하진 않을까? 너무 추운 밤이면 얼어 죽지 않을까? 이래저래 고니는 내 상상 안에서 매우 궁금한 새가 되었다. 아프로디테의 (끈 없는) 수레를 끄는 새가 백조라는 것,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도 백조라는 걸 알게 됐지만 나는 여태도 고니의 빡센 고집이 딱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도 행복을 찾아 먼먼 길을 비행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들도 불행을 안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들의 행불행의 진원도 먹이이겠지.
먹이 ․ 현실 ‧ 행복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혹자는 ‘먹고 사는 일쯤 뭐 그리 어려울까보냐’고 핑, 핑핑 콧방귀를 남발할지 모른다. 하지만 식사보다 중요하고 큰일은 없다. 내 피붙이가 끼니를 거른다면 그것은 즉 나의 불행이며, 내 노후의 끼니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이다. 아무리 훌륭한 행복의 논리를 습득했다 하더라도 밥이 없는 처지라면 그 행복론은 허사에 불과하다. 젊은이여, 오늘의 즐김을 믿지 말고 미래를 위해 긴장하라. 늙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오는 세월의 발굽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당신의 앞날을 기도하느라 잠 못 드는 부모님을 잊지 마시압. 당신의 근면성실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의 하루하루를 평안케 하리니! 무덤에 가신 뒤에도 안심이리니!
<행선지를 알리지도 않고 행복이 떠났습니다.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곁에 행복여조로(幸福如朝露)를 짝 지워야겠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저는 개인적 ‘행복 1.2.3’을 탐사했습니다. 누군들 그만한 행복이 없겠습니까만, ‘내 인생의 행복 1.2.3’을 발굴하다보니 제가 정말 행복했던 사람이라는 걸,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 행복과 사랑을 갚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의 행복은 뼈아픈 현재를 위해, 그리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위안입니다. 오늘의 난관은 머지않은 행복의 기초입니다. 청춘여조로(靑春如朝露)를 상징하는 얼굴 하나가 거울 속에서 쓸쓸히 끔벅거리는군요. 텅 빈 유리창에 스며드는 저 봄빛은 누가 보낸 무엇일까요? 서둘러 돌아간 행복의 자매는 아닐까요?>
200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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