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벽과 벽 사이/ 양문희

검지 정숙자 2024. 9. 17. 03:22

 

    벽과 벽 사이

       울란바토르 샹그릴라호텔

 

     양문희

 

 

  열려 있던 창이 닫히는 것을 본다

 

  급히 날아든 새와 빠져나갈 새를 위해 맛있는 것들이 많다

  오렌지 맛 사탕 쌓여 가고 내 강아지 있고 초코파이가 있고 오징어 땅콩이 있고

  창밖으로 삐져나온 맛집 카탈로그가 있다

 

  눈뜬 강아지, 닫힌 창을 향해 짖는다

 

  빠져나간 빈방엔 새의 깃털이 쌓이고

  두고 간 행선지 팸플릿에 그려진 붉은색 동그라미, 몽골 초원에서 밤하늘 삼태성 찾기다 고비사막에서 낙타 타고 울란바토르 가기다

 

  오래전 그와 가방을 샀다 시옷으로 시작하는 가방의 메이커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레드카펫이 깔린 곳을 따라 구르기엔 충분한 바퀴였으니까 객실로 가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고장 나기 쉬운 것도 바퀴였으니

 

  그렇게 복도 끝 CCTV는 돌고 있었다 하늘 보고 있었다

 

  별자리 움직이기 시작하고 양고기 말고기를 즐겨 먹던 입맛이 변하고 과자 껍질 또 쌓일 때

  조악하고도 조악한 새 모양의 과자, 건조한 부리에 핏방울이 맺히도록 고도를 낮출 때

 

  그믐달 모양이 된 초고파이와 햇반 그릇에 담아 준 땅콩볼을 집어먹고 입가심을 한다

  새의 울음도 웃음이 된다.

    -전문(p. 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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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양문희/ 2014년 『시에』를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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