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김종삼(1921-1984, 63세)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어머니의 배 ㅅ속에서도
보이었던
세례를 받던 그 해였던
보기에 쉬웠던
추억의 나라입니다.
누구나,
모진 서름을 잊는 이로서,
오시어도 좋은 너무
오래되어 응결되었으므로
구속이란 죄를 면치 못하는
이라면 오시어도 좋은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그것을,
씻기우기 위한 누구의 힘도
될 수 없는
깊은
빛깔이 되어 꽃피어 있는
시절을 거치어 오실수만 있으면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이 됩니다.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수요 많은 지난 날짜들을
잊고 사는 이들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가 포함한 그리움의
잊어지지 않는 날짜를 한번
추려주시는, 가저다
주십시오
인간의 마음이라 하기 쉬운
한번만의 광명이 아닌
솜씨가 있는 곳임으로
가저다 주시는
그 보다,
어머니의 눈물가에 놓이는
날짜를 먼저 가저다
주시는···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이 됩니다
-전문-
▶ 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 (발췌)/ 김종삼 : 죽음과 삶의 상호교섭운동_정과리/ 문학평론가
한번 훑어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우선은 문법적으로 엉킨 문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연부터 그 엉킴은 나타나는데, 해독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 뜻은 이렇다: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이 있는데, 그 부락은 태어날 때부터 점지되었던 구원의 나라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내정되었고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이 예정되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예정은 쉽게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가 부가적인 의미로 덧붙는다. 그래서 "추억의 나라"이다. 이 추억의 나라, 즉 예정되었으나 가지 못한 나라가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으로 상징되었다.
따라서 시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듯하다. 가 닿지 못한 그 나라에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런데 시인은 그 전에 자신의 조건을 점검한다. 그것은 '모태신앙'이 구원의 징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절박히 깨달은 자의 정직한 점검이다(실로 김종삼의 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런 점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세상의 달성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의 달성과 나의 완성은 언제나 동시적인 것이다). (p. 시 127-129/ 론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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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7월(415)호 <기획연재 61/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 에서
* 정과리/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 『스밈과 짜임』(1988), 『글숨의 광합성』(2009),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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