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을 다녀오며
이은봉
당신의 영혼은 하늘에서 살더라도
당신의 몸은 땅에서 살지요
당신의 영혼을 찾아 하늘까지 갈 수는 없어
당신의 몸이 사는 땅으로 갔지요
대청호 근처 산속
당신의 집을 찾아간 것이지요
늦가을이라선지 당신의 둥그런 풀집은
바짝 말라 있더군요 여기저기
멧돼지들의 발자국들이
거칠게 남아 있기도 하고요
멧돼지가 긴 주둥이로 마구 땅을 헤집어
당신의 집 정원에도
몇 군데 파인 곳이 있더군요
새로 자란 담배나물과 산쑥이
삐쭉삐쭉 머리통을 디밀고 있기도 하고요
당신의 둥그런 풀집부터
서둘러 정리했지요 문을 열고
당신이 계신 곳까지 갈 수는 없지만요
낫과 괭이를 들고
당신의 집 정원을 다듬느라고
쩔쩔맸어요 두 번 엎드려 절하고
잘 다듬어진 당신의 집을 거기 두고
돌아오는 마음이 조금은 아팠어요
더는 당신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어요
오늘 저녁잠은 참 달겠다고
당신을 향한 빚을 쬐금은 갚았으니까요
적당한 피로도 얻었으니까요
이런 말도 다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전문(p. 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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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이 계절의 시1> 에서
* 이은봉/ 1984년『창작과비평』 신작시집을 통해 등단, 시집『걸어다니는 별』등, 시조집『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등, 평론집『시와 꺠달음의 형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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