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당신의 집을 다녀오며/ 이은봉

검지 정숙자 2024. 7. 13. 14:54

 

    당신의 집을 다녀오며

 

     이은봉

 

 

  당신의 영혼은 하늘에서 살더라도

  당신의 몸은 땅에서 살지요

  당신의 영혼을 찾아 하늘까지 갈 수는 없어

  당신의 몸이 사는 땅으로 갔지요

  대청호 근처 산속

  당신의 집을 찾아간 것이지요

  늦가을이라선지 당신의 둥그런 풀집은

  바짝 말라 있더군요 여기저기

  멧돼지들의 발자국들이

  거칠게 남아 있기도 하고요

  멧돼지가 긴 주둥이로 마구 땅을 헤집어

  당신의 집 정원에도

  몇 군데 파인 곳이 있더군요

  새로 자란 담배나물과 산쑥이

  삐쭉삐쭉 머리통을 디밀고 있기도 하고요

  당신의 둥그런 풀집부터

  서둘러 정리했지요 문을 열고

  당신이 계신 곳까지 갈 수는 없지만요

  낫과 괭이를 들고

  당신의 집 정원을 다듬느라고

  쩔쩔맸어요 두 번 엎드려 절하고

  잘 다듬어진 당신의 집을 거기 두고

  돌아오는 마음이 조금은 아팠어요

  더는 당신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어요

  오늘 저녁잠은 참 달겠다고

  당신을 향한 빚을 쬐금은 갚았으니까요

  적당한 피로도 얻었으니까요

  이런 말도 다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전문(p. 137-138)

  ----------------------

 *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이 계절의 시1> 에서

 * 이은봉/ 1984년『창작과비평』 신작시집을 통해 등단, 시집『걸어다니는 별』등, 시조집『분청사기 파편들에 대한 단상』등, 평론집『시와 꺠달음의 형식』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월/ 정겸  (0) 2024.07.13
상생/ 박현솔  (0) 2024.07.13
하우하필(夏雨下筆) 1/ 김송배  (0) 2024.07.13
물의 표정/ 이향아  (0) 2024.07.13
빨래들의 합창/ 윤고방  (1) 2024.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