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딩아돌하』를 내면서/ 2024-봄(70)호>
앤솔로지, 꽃잎을 모은(전문)
임승빈/ 본지 주간
『딩아돌하』가 벌써 통권 제70호다. 편집진은 이 일흔 번째의 발간에 의미를 두어 특집을 엮자고 했다.
지금까지는 5년(제20호), 10년(제40호)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했는데, 18년째인 제70호를 기념하자고? 어느 한 호 쉬운 적이 없었지만, 열악한 재정 형편 속에서 편집진도 어지간히 힘이 들었나보다.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오래 전, 어느 자리에서 나는 '시는 꽃잎으로 만든 폭탄'이라 말한 적이 있다. 꽃잎을 모아 만든 폭탄이 우리 머리 위에서 터지고 또 터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래서 우리는 시를 쓰고, 또 읽는 게 아니냐는 취지였는데, 좌중의 몇은 그게 누구의 말인지를 궁금해 했다.
분명 어디에서 읽거나 들은 말인데, 그게 누구의 말인지를 도대체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유럽 어느 시인의 말이라고 둘러대곤 했다.
며칠 전이었다.
고향 옥천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는 친구의 유튜브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꽃을 따는 것은/ 죽임이 아니라/ 욕망의 진전을 정지하고/ 시간의 흐름을 단절해/ 최상의 생명을 무시간에 봉헌하는/ 신성한 의식이다'라는, 역시 의사라는 김 모 시인의 시 「1월의 여름」에 나오는 아포리즘aphorism을 소개하면서, 시화집詩華集, 또는 사화집詞華集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앤솔로지anthology는 희랍어 앤톨로기아anthologia에서 나온 말이라고 밝히고 있는 때문이었다.
시화집, 또는 사화집이라고도 하는 앤솔로지는 시뿐만 아니라, 좋은 글, 또는 좋은 음악이나 그림을 모아 놓은 것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를 비롯한 모든 좋은 예술은 다 꽃잎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어원을 알기 위해 플라톤을 전공한 김 교수께 희랍어 앤톨로기아anthologia를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금방 문자가 왔다. 희랍어 앤톨로기아anthologia는 앤토스anthos와 로기아logia가 합쳐진 말인데, 앤토스anthos는 blossom-집합적으로 한 나무의 모든 꽃, 특히 과수나무의 꽃-이나 flower-꽃의 일반적 통칭, 특히 관상용 꽃-을 말하고, 로기아logia는 gathering(모음)의 뜻으로, 영어 anthology는 '꽃잎을 따 모은 것', 즉 '꽃잎 모음집'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단순히 '꽃잎을 따 모은 것'과 '꽃잎으로 만든 폭탄'은 다르다. 그냥 '꽃잎을 따 모은 것'에서는 강력한 폭발의 역동적 이미지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꽃잎을 따 모은 것'과 '꽃잎으로 만든 폭탄'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 전에도 이미 '시는 그냥 시가 아니라, 꽃잎'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난 18년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행한 시전문계간지 『딩아돌하』는 더 없이 소중한 일흔 권의 꽃잎 모음인 것이다.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그냥 그런 꽃잎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꽃잎들의 모음이다. 관습과 통념을 극복해 낸 자리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전혀 새롭고 낯선 꽃잎들의 모음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꽃잎의 연금술사인 우리 시인들은 쓸데없는 욕망으로만 들끓는 시장바닥으로부터 얼마나 힘겹게 도망해야 했던가. 이 세계의 모든 존재에 덕지덕지 늘어 붙어있는 관습과 통념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 얼마나 힘든 자기부정과 검열의 과정을 거쳐야 했는가. 전혀 새롭고, 불편하고, 일상의 평온까지를 부정하는, 경우에 따라서는 섬뜩하지까지 한 그 새로운 꽃잎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또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야 했는가.
지난 18년 동안 시전문계간지 『딩아돌하』는 이렇게 창조적인 시인들을 위해 존재해 왔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더 크게 확장될 것이고, 우리의 삶도 역시 더 크게 새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뿐만 아니라, 지난 18년 동안 이런 시인들의 숭고한 작업과 『딩아돌하』의 발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긍정하고 성원해 준 <딩아돌하문예원> 가족은 물론, 많은 독자 및 후원자들의 고마운 손길이 있어 왔다.
『딩아돌하』 통권 제70호.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니 모두 고마운 일뿐이다. 그리고 그 고마운 손길에 대한 보답을 위해서라도 '한국시의 내밀성內密性 추구를 위한' 『딩아돌하』의 우직한 발길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 (p. 10-12)
주간 임 승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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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4-봄(70)호 <『딩아돌하』를 내면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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