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사랑
정일근
커피벨트 고산지역의 아라비카 커피 열매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그림자 나무 아래서 명품의 맛이 든다
이 나라 깊은 산 어느 그늘에 자란 산삼이 최고의 명약이 된다
맹독 가진 뱀이 그늘에서는 유순해져 사람을 피해 간다
보아라, 꽃은 그늘에서 향기를 만들고 볕 아래서 시든다
시인이여, 너 또한 꽃 지는 그늘에서 시를 만나지 않았는가
우리 입맞춤이 그늘에서 가장 뜨거웠던 법이니
정수리가 서늘해지는 그늘의 사랑이 있고 그 그늘에서 열매가 달게 익는다
너는 뼈 익고 살타는 햇볕 속을 걸어가면서 적의 없이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볕이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볕이 주는 선물이니 절하며 감사하며 받아라
-전문(p.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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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 『미당문학』 2024-상반기(17)호 <신작시> 에서
* 정일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바다가 보이는 교회』『경주 남산』『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소금 성자』『혀꽃의 사랑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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