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겹
김영
한 겹은 따뜻한 날씨
날씨 위에 홑겹 승복을 두른
라오스 승려들에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도 한 벌 옷이고
발바닥에 닿는 흙의 촉감도
한 켤레 신발이다
일찍이 치장治粧을 버린 스승을 두었으니
흩날리는 바람 또 부질없다
몇 줄로 삭아 내린 경건이
온몸을 지탱하는 뼈다
길게 줄 맞춰 탁발 중인 한 겹들
두툼한 아침 안개가 상승기류를 타면
한 덩어리의 밥이 바구니 안에
쌓이는 탁발
밥을 구하는 가난한 줄이 꾀죄죄하다
남루도 허기도 자비도 모두
한 겹이어서
따뜻한 곳의 꽃들은 다
한 겹의 꽃잎들로 핀다
사원으로 돌아가는 승려들의
발뒤꿈치에 박힌 한 겹의 고행이
유독 단단하다
그 무심함에 일생을 두었다
-전문(p.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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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시> 에서
* 김영/ 1996년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등단, 시집『벚꽃 지느러미』『파이디아』『나비 편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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