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한 겹/ 김영

검지 정숙자 2024. 1. 16. 01:07

 

    한 겹

 

    김영

 

 

  한 겹은 따뜻한 날씨

  날씨 위에 홑겹 승복을 두른

  라오스 승려들에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도 한 벌 옷이고

  발바닥에 닿는 흙의 촉감도

  한 켤레 신발이다

 

  일찍이 치장治粧을 버린 스승을 두었으니

  흩날리는 바람 또 부질없다

  몇 줄로 삭아 내린 경건이

  온몸을 지탱하는 뼈다

 

  길게 줄 맞춰 탁발 중인 한 겹들

  두툼한 아침 안개가 상승기류를 타면

  한 덩어리의 밥이 바구니 안에

  쌓이는 탁발

  밥을 구하는 가난한 줄이 꾀죄죄하다

  남루도 허기도 자비도 모두

  한 겹이어서

  따뜻한 곳의 꽃들은 다

  한 겹의 꽃잎들로 핀다

  

  사원으로 돌아가는 승려들의

  발뒤꿈치에 박힌 한 겹의 고행이

  유독 단단하다

  그 무심함에 일생을 두었다

     -전문(p.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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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시> 에서

  * 김영/ 1996년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등단, 시집『벚꽃 지느러미』『파이디아』『나비 편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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