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집
이주송
물이 빠져나가자 바위가 알몸을 드러낸다
여러 갈래의 골목
흡착과 집착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비린내를 갉아 먹고 사는 패각류들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호구수 많은 마을 하나 이루고 있다
한 천년은 거주했을 것만 같다
밀착, 또 밀착
일용할 양식의 넓이는 겨우 오 센티
구역을 나누지 않고도 다툼을 모르는 방식이다
빈부 격차마저 없다
물때가 오손도손 포자를 키운다
하루에 두 번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성장통이나 위기도 있다
새들이 쪼아 먹을 때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면
온몸으로 변주했던 날들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언젠가는 몸이 집이 되어 게들의 한때가 되었다가
나중엔 아주 나중엔 흰모래가 될 것이다
달라붙어도 좋고
떨어져 있어도 좋을
밟으면 이내 바서질 소인국의 낮은 집들
더부살이 소용돌이 한 줌 등지고
저마다의 생生에 간을 맞춘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이내 물소리가 흘러들 것만 같다
-전문(p. 178-179)// 『다층』 2020-봄(85)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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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에서
* 이주송/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식물성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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