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물집/ 이주송

검지 정숙자 2024. 1. 14. 19:21

 

    물집

 

    이주송

 

 

  물이 빠져나가자 바위가 알몸을 드러낸다

  여러 갈래의 골목

  흡착과 집착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비린내를 갉아 먹고 사는 패각류들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호구수 많은 마을 하나 이루고 있다

  한 천년은 거주했을 것만 같다

  밀착, 또 밀착

  일용할 양식의 넓이는 겨우 오 센티

  구역을 나누지 않고도 다툼을 모르는 방식이다

  빈부 격차마저 없다

  물때가 오손도손 포자를 키운다

  하루에 두 번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성장통이나 위기도 있다

  새들이 쪼아 먹을 때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면

  온몸으로 변주했던 날들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언젠가는 몸이 집이 되어 게들의 한때가 되었다가

  나중엔 아주 나중엔 흰모래가 될 것이다

  달라붙어도 좋고

  떨어져 있어도 좋을

  밟으면 이내 바서질 소인국의 낮은 집들

  더부살이 소용돌이 한 줌 등지고

  저마다의 생에 간을 맞춘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이내 물소리가 흘러들 것만 같다

     -전문(p. 178-179)// 『다층』 2020-봄(85)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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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100> 에서

  * 이주송/ 2020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식물성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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