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동행문학 젊은 시인상 수상작> 中
무국적 발자국
김보나
창밖으로 싸락눈이 흩날렸다
저녁에는 내 방으로
친구들이 모였다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무엇으로 탄생할지
내기를 했다
지혜는 뱀
은민이는 식충식물
사람을 고르는 쪽은 없었다
케이크의 초를 끄면
눈앞의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하루
생일이 좋았다
내게 말을 거는 자를
적의 없이 바라볼 수 있어서
타인이 건네는 말을
덜 두려워할 수 있어서
코끝에는 연기 냄새
어두워진 세상에서
다들
제 몫의 접시를 쥐고
서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형광등을 켜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음식에
숟가락을 들이대며 웃었다
케이크를 자르면
빈 공간이 커지고
날 부르는 목소리를
경계하며 살아간다 해도
한 번쯤 불을 껐던 그 입으로
누군가를 새로이 축복할 수 있기를
떠나가는 자가 눈에 남긴 발자국을 보며
겨울이 남긴 화인이라 여겼다
사람들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머리에선 재 남새가 났다
-전문(p. 23-25)
* 심사위원: 송기한(문학평론가) 여태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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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제1회 동행문학 젊은 시인상> 에서
* 김보나/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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