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돌스키 외 1편
김재홍
미니 월드컵이라는 유로 2008 B조 예선 1차전
폴란드 태생 독일인 포돌스키는 조국의 골네트를 향해
전반 19분과 후반 27분 각각 골을 쏘았다
통렬한 발리슛과 통한의 결승골 사이에서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독일 팬들은 '폴스카'를 외치며 환호했으나
한편에선 "독일은 폴란드인을 빌려 쓰고 있다"며 야유를 퍼부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뵈르테제 슈타디온에서 쏘아올린
외신은 한결같이 '골은 있었지만 세리머니는 없었다'고 했다
탯줄을 폴란드 남부 글리비체에 묻었고
아직 많은 가족과 친척들은 고국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 모두 가슴 한쪽에 뜨겁게 자리잡고 있으므로
23살 포돌스키는 웃을 수 없었다고 했다
폴란드는 1933년부터 75년 동안 단 한 번도 독일을 꺾지 못했고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무력 침공을 포함해
16번의 국가대표팀 간 경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냉전시대나 데탕트 이후 오늘까지 폴란드는 독일에 뒤처진 나라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 어느 하나도 이길 게 없는 나라
포돌스키와 그의 아버지는 1987년 공산 정권의 폭압을 피해 독일로 향했다고 한다
19살부터 전차 군단의 주 공격수가 된 이래 승승장구
축구 하나로 분데스리가를 지배하고 있는 포돌스키
경기 전 독일 국가가 울려 퍼질 때 그는
독일 선수 사이에서 한 번도 입을 떼지 않고 묵묵히
그저 앞만 보고 서 있었다고 한다
폴란드는 2002년부터 부산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골로
월드컵 본선 역사상 우리에게 첫 승을 안겨 주었던 나라
그때 우리는 유럽 장신 군단을 물리친 역사적 쾌거로
온 나라가 시뻘건 물결이 되어 환호와 찬사를 보냈었다
-전문(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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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지 않겠다
웜뱃에게는 길을 묻지 않겠다
데블에게도 모르는 길을 묻지 않겠다
오리너구리에게도 절대 길을 묻지 않겠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길로
추호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길은 가도 가도 직선, 나의 길
세찬 비와 모래바람과 해일 폭풍 쓰나미
마리아나제도 솔로몬제도 유카탄반도를 향해
곧바로 뻗은 길
나는 이제 모르는 길
갈 수 없는 길 가로막힌 길을 뚫기 위해
상어 뱀장어 불가사리 키조개 홍합 왕새우에게
길을 묻지 않겠다
-전문(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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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메히아』 에서/ 초판 1쇄 2009. 3. 110/ 개정판 1쇄 2023. 3. 31. <시작> 펴냄
* 김재홍/ 1968년 강원 삼척 출생, 2003년 ⟪중앙일보⟫에 시 「메히아」가 & 2022년 ⟪광남일보⟫에 평론이 각각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메히아』『다큐멘터리의 눈』『주름, 펼치는』『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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