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녀는 치솟고
배세복
수리조합장 집은 방죽 아래 있었고
하늘로 치솟는 추녀를 가졌다
해는 언제부터 저기서 빛났나
다른 이들은 근처 논밭에서 일했다
길을 걸을수록 뜨거워지는 정수리
방아깨비는 끊임없이 방아질했다
글쎄 요즘에도 머슴이 있다네요
갑은 천천히 머슴 머슴 중얼거려 봤다
꼭 일소가 밭을 갈다가
멈추며 우는 소리 같았다
해는 타올라 저수지 윤슬을 바라보면
타버릴 것처럼 뜨거워지는 눈알
그는 이 길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안장은 꺼지고 체인은 늘어났다
저쪽은 물귀신이 있다는 곳이다
귀신은 왜 사람들을 데려갈까
누구는 데려오고 누구는 데려가고
정말 매미를 잡아 날개를 떼도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왜 산 것들은 죽기 전까지 우는 것일까
갑은 손그늘을 만들어 봤다
여전히 땀은 솟아났다
달걀꽃도 지쳤는지 풀어진 노른자
걸음을 멈추고 치솟는 추녀 쪽을 향해
동그랗게 손나팔을 모았다
아버지, 병이 태어났어요
게타리를 한껏 추겨올리던 을이
갑을 따라 소리쳤다
손톱 끝이 까만 탯국물로 가득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집의 주인공 '병'의 탄생을 알리는 이 시는 '병'의 누나인 '갑'의 시선에 따라 서술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닌 '그'라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도, 물귀신을 생각하는 것도, 동생이 태어났다고 소리치는 것도, 자기를 따라 소리치는 동생 '을'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갑의 시선이고 갑의 목소리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시선은 이제 막 태어나, 이후에서나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병'의 목소리로 말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집의 전체 화자는 결국 '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병'에 의해 추측되는 또는 '병'이 나중에나 전해 들었을 '갑'의 이야기다. 짧은 시 안에 이런 중층적인 시선이 들어 있다. 이것을 통해 이 시는 이중 삼중의 서정을 만든다. 갑이 본 아버지와 아버지와 관련된 들은 이야기 그래서 느낀 심정, 그것을 병이 다시 생각하며 느낀 심정이 이 한 편의 시에 담겨있다. 이것을 통해 한 개인의 서정은 한 가족의 서정이 되고 그것이 고스란히 '병'이 지은 시 안에 농축되어 있다. 서사적 화자의 사용을 통해 이렇듯 서정성의 깊이와 질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p. 시 20-21/ 론 130-131) (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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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선경작가상 수상시집 『두고 온 아이』 에서/ 2023. 11. 27. <상상인> 펴냄
* 배세복/ 2014년 ⟪광주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몬드리안의 담요』『목화밭 목화밭』, <문학동인 Volume>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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