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자본 이데아/ 양해연

검지 정숙자 2023. 11. 23. 01:53

 

    자본 이데아

 

     양해연

 

 

  무지개를 좇아 산을 넘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낭만주의가 지나갔다

 

  부패한 살빛의 대지와

  뱀의 몸짓을 타고 흐르는 강물 저편 

  가느다란 황톳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간다

  자연주의가 지나갔다

 

  서울에 서울타워가 있다

  파리에 에펠타워가 있다

  런던에 런던타워가 있다

  혁명의 시대가 지나갔다

 

  바르셀로나 광장 가우디의 가로등 아래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등잔의 램프 같기도, 풍차의 날개 같기도 한 그의 가로등을 도처에 세우려던 계획이 비용 문제로 취소됐다

  신도시 예정지를 남몰래 사들여 용버들을 심은 사람은 왜 하필 용버들을 택했을까? 물을 정화하고 해열과 진통의 효능을 가진 버드나무를

 

  마지막 자본주의가 지나가는 중이다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문예사조의 역사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순으로 전개되는데 이 시에 나오는 자연주의는 에밀 졸라가 문을 여닫은 자연주의가 아니고 자연을 벗 삼아 진행되는 자연주의다. 모험을 감행한 낭만주의나 자연에 귀의한 자연주의의 시대가 가고 혁명의 시대도 지나갔다. 파리의 에펠타워는 프랑스대혁명의, 런던의 런던타워는 산업혁명의 다른 이름이다. 서울에 서울타워가 있다고 하는데 70년대 산업화시대의 눈부신 발전을 가리켜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 것에 착안한 듯하다. (서울의 남삼타워는 박정희 제3공화국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들 혁명이 이룩한 종착지는 자본주의다. 돈이 되는 곳에 사람이 손길을 뻗치는 것이 자본주의다. 시인이 보건대 "신도시 예정지를 남몰래 사들여 용버들을 용버들을 심은 사람은 왜 하필 용버들을 택했을까"가 의문이다. "물을 정화하고 해열과 진통의 효능을 지닌 버드나무"를 말이다. 가우디의 가로등을 도시 곳곳에 세우려던 계획이 비용 문제로 최소되기도 하고, 자본(주의)은 혁명적인 예술을 용인하지 않고 이렇게 자연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시인은 자본주의가 영 못마땅한 것일까? 2023년인 지금, "마지막 자본주의가 지나가는 중"인데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p. 시 76/ 론 100-101) (이승하/ 시인 ·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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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달팽이 향수병』 에서/ 2023. 10. 31. <서정시학> 펴냄

   * 양해연/ 전남 목포 출생, 경기 이천에서 성장, 2016년『예술가』로 등단, 시집『종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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