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헨드릭 하멜, 당신을 보았다 외 1편/ 한경용

검지 정숙자 2023. 11. 21. 01:45

 

    헨드릭 하멜, 당신을 보았다 외 1편

 

     한경용

 

 

  당신의 선단,  선인장처럼 초록이다

  대정현 차귀진 아래 대야수 해변이 눈부시다

  이방인의 표류는 내 안의 바다를 넓혔다

  수평선은 언제나 그리움을 동반한다

  새로움을 찾는 자에게만 섬은 열린다

  나와 당신, 문무文武 동의어일 뿐

  어서 와라, 우연의 역사여, 당신의 표류기에 쓰일 기근의 섬

  항해는 누군가와 겨루는 것이 아니고

  이역 하늘 아래 자신을 향해 저어 가는 것

  관원들과 하께 당신들을 구조한다

  세상은 물 한 모금이면 선하다

  당신들이 온 제주 해역

  어린 시절 '해가 뜨는 쪽은 아름답다'라는 환상의 약속이다

  헨드릭 하멜, 내게 넓힘을 주셨으니 경외하노라

  분노, 방탕, 광기, 나도 그 모든 재난을 안고 떠나고 싶다

  이 섬을 안고 정신을 더듬으며 순수의 폭을 넓혀 가 보자

  이제 귤림이 주는 밭의 위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물 아래 신과 조우했기 때문에

  지상의 물신을 믿지 않는다

  선대의 유배는 내 이성의 유배이다

  그어진 경계를 극복하고 도전할 길을 알려다오

  바다의 장벽을 넘어서고 파도를 뛰어넘는 강자의 논리를 부여해 다오

  이루는 순간 또 다른 도전과 응전에 설레고 가다가 힘들면

  정박하고 탈출하고 무념무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물아일체로서

  표류선의 나침반은 달을 추종한다

       -전문(p.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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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림의 꽃들은 누굴 위해 피었나

          임술 제주민란*

 

 

  탐라의 여명은 왔다

  액막이굿으로 용왕신이 주신 햇살

  관대하다 이곳에 쉬게 하니

  조상의 음덕에 어이 한이 있겠는가마는

  마침내 어이 여기까지 꺼이꺼이 왔구나

  석양에 닻을 올려 행장을 꾸렸으나

  저녁에 큰바람 부니

  포구의 마을에 봉화를 올리겠네

  왕조의 독아에서

  잡초의 피를 빨아먹고 넘어지는 도적들이다

 

  "구관이엥 해ᄀᆞᆺ도 말라

  신관이라도 일ᄀᆞᆺ도 말라

  산지 물 사흘 먹으니

  원의 공ᄉᆞ ᄒᆞᆫ 공ᄉᆞᆯ러라"**

 

  그자가 그자이니

  온갖 착취가 이뤄지는 성벽, 불의 세례를 받아라

  언제까지 국난의 폭풍이 휩쓸고 가나

  굴욕을 어둠의 그늘 속으로

  끌고 들어가며 신음, 쌓이고 쌓인 압박 아래

  그 작은 눈에는 의혹이 가득히 깃들여졌다

 

  '민폐시정규칙'을 외치며 밤의 성내를 밝히며

  이제는 동녘을 향해 걸어가자

  조랑말을 타고 달려 보는 성산 일출봉

  함께 꿈꾸던 날이랴

  오랜 말발굽 아래 민초는 밟혀 가는데

  영택永澤의 길, 찾아야 할 길

  이 다시 새롭도다.

      -전문(p. 91-92)

 

   * 제주민란: 1862년(철종 13년) 당시 임헌대 방어사가 특정인의 청탁을 받아 부역과 세금을 면제하고 그 부담을 농민에게 떠넘겨 징수하는 등 가렴주구를 멈추지 않음에 따라 강제검과 김홍채 등이 3음의 농민 무리를 이끌고 제주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갔던 것이다. 임헌대 제주 목사는 화북리로 도망가서 조정에 급히 보고가 되었고 강제검과 김홍채 등은 목이 베어져 저잣거리에 내걸렸다.

  ** "구관이라고 해롭게도 말 것이며/ 신관이라고 칭찬도 말라/ 산지 물 사흘 먹으니/ 원이라 벼슬은 한가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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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귤림의 꽃들은 누굴 위해 피었나』 에서/ 2023. 10. 31. <시작> 펴냄

  * 한경용/ 제주 김녕리 출생, 2010년『시에』 신인상 수상, 시집『빈센트를 위한 만찬』『넘다, 여성시인 백년 100인보』『고등어가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