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
김예태
끈 풀린 코로나19 서성거리는
21세기의 지구는
그리움의 수축과 불신의 팽창으로 빚어진 땅
낱낱으로 흩어진 얼굴이 고개를 돌려 다시 외면을 한다
마스크로 모두 입을 막았으니
이제 사람을 향해 열어야 할 귀는 필요 없다
눈을 맞추면 하늘과 바람과 풀꽃들은
묵은 얼음을 깨고 와서 방글거리는데
너와 나
담장을 높이 치고
굽은 등을 돌려 모로 눕는다
갈라지고 흩어진 마음들이 뜨거운 갈망으로
망연자실 바라보아도
반응하면 안 된다
손길 주면 안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잔등에 올라앉아
그토록 취해 졸졸 따라다니던 노령의 해체주의가
마침내 서둘러 완성이 되는갑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시 세계 가운데 하나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코비드」이다. 한때, 우리 시단, 아니 전세계적인 화두 중의 하나가 이른바 근대성 논쟁이었다. 하버마스를 비롯한 독일 철학자들은 계몽의 기획에 여전히 미련을 두고 있었고, 그 초기에 설파되었던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리오타르를 비롯한 프랑스 해체주의자들은 그런 거대 담론을 부정하고 작은 담론, 곧 소서사만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본령으로 이해했다. 후자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이거니와 그 특징적 단면은 작은 자아였다. 다시 말해 작은 영역으로 자아를, 세계를 축소해서 사회를 진단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관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코비드'의 세계적 유행을 포스트모던의 궁극적 실천이 아니었나 하고 의심하기에 이르른다. 이런 사유는 '코비드' 팬더믹(팬데믹)이 가져온 모습들, 가령 작은 규칙들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광장보다는 밀실, 접촉보다는 비접촉, 대중보다는 혼자에서 보듯 통합보다는 고립을 강제한 것이 '코비드'가 남긴 유산이고 보면, 이런 현실은 포스트모던의 현실에 꼭 들어맞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현상에 대해 결코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잔등에 올라앉아/ 그토록 취해 졸졸 따라다니던 노령의 해체주의가/ 마침내 서둘러 완성이 되는 갑다"라고 냉소적 시선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시인은 영미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지향을 추구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고, 하버마스의 계몽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을 모더니스트의 사유 틀에 놓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대로 시인의 작품 세계에서 모더니즘의 의장이나 내용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p. 시 86-87/ 론 129-130) (송기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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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곡선에 관한 명상』 에서/ 2023. 9. 30. <월간문학 출판> 펴냄
* 김예태/ 2002년『지구문학』으로 수필 부문 & 2011년『시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빈집구경』『예술은 좋겠네』, 수필집『문을 연 아가씨와 문을 닫은 아저씨』, <달섬문학> <시현장>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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