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이 세계의 갇힘을 떨쳐 버리고 싶네/ 한경용

검지 정숙자 2023. 11. 21. 00:58

 

    이 세계의 갇힘을 떨쳐 버리고 싶네

 

     한경용

 

 

  길할 길 복조 길조吉祚

  내 이름처럼 되지 않는 세상

  흉년과 기근에 관리들의 수탈이 날이 갈수록 심하네

  검은 보리만 남겨 놓고 검은 섬을 떠나는 사람이 많네

 

  "삼대 종ᄉᆞ 하던 종은 

  새 대엔 나서 삼 년을 사난

  먹던 밥을 선반에 놓고

  입던 옷을 대회에 거난

  보리방에 물 섞언 노난

  여히 알로 산 도망ᄒᆞᆫ다

  유월방에 제우더라

  나일 도욀 ᄒᆞ나이도 엇다"*

 

  장판 삼촌은 번찍한** 날, 고기 잡으러 가서 경상도나 전라도

  해안으로 간다고 말하곤 돌아오지 않네, 안 삼촌도 같이 갔네

  대마도나 중국의 해랑도까지, 도망가서 곱아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네

  한 해 몇천 명이 그러니, 섬의 인구가 줄어 조정에서는

  마침내 출국금지령****이 떨어졌네, 주민들이 뭍에 가서

  이처럼 딱한 사정을 전하고자 하지만 수령들은 임금에게 알려질까 봐

  진상하러 가는 자 말고는 아무도 섬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네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 인성군의 윤씨 부인과 3남 2녀 모두 제주도로 유배당했는데

  육지 사람들은 제주에 오는 것을 마치 죽을 곳에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 섬 사람들은 죽을 고생을 해도 육지에 나가기를 마치 천당에 가는 것처럼 여기네

  선대의 할망아, 길조는 안식과 자유를 원하오

  어떻게 추구할까

  이 세계의 갇힘과 열림 사이

     -전문-

 

  * 삼대 종사하던 머슴은/ 새 대에는 삼 년을 사니까/ 먹던 밥을 선반에 놓고/ 입던 옷을 횃대에 걸어/ 보리 방아를 찧으려고 물에 담그니/ 처마 밑으로 도망쳐 버린다/ 유월 방아 힘겨우더라/ 내 일 도울 사람 한 사람도 없구나" (대회: 횃대, 여히 알로: 처마 밑으로).

  ** 번찍한: 멀쩡한

  *** 곱아 부는: 숨어 버리는

  **** 1629년(인조 7년)~ 1823년(순조 23년) 출국금지령이 내려지다.

 

  해설> 한 문장: 제주도의 척박한 토양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일찌감치 발달한 것이 교역이었는바, 탐라인들은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인기가 많았던 전복을 수출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 변화가 생긴 것은 원이 제주도를 직할령으로 삼으면서였다. 1273년 삼별초항쟁을 진압한 몽골/원은 1275년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였다. 남송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원은 백여 년 동안 통치하면서 제주도를 원나라 14대 목장 가운데 하나로 키워 냈다. 목마牧馬 역량이 전래되면서 제주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인구가 급격하게 늘기도 하였다.

  말 산업은 조선 태종 · 세종 대에 이르러 파탄을 맞이한다. (···) 이때 성주 · 왕자는 각각 좌도지관 · 우도지관으로 격하되었던 것이며, 1445년(세종 27년)에는 좌도지관 · 우도지관마저 철폐되었다. 이러한 중앙집권화와 함께 진행된 정책이 말 산업을 국가의 통제 대상으로 묶어 버리는 것이었다.

  태종은 말의 수효를 마적馬籍에 정리하는 한편 말을 공물로 진상토록 정책을 시행하였다. 1408년(태종 8년) 중앙정부의 체계적인 제주마 수탈이 이뤄지기 시작하였고, 1434년(세종 16년)에는 우마적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7) 제주 경제는 이로써 파탄을 맞이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성종(재위 1469~1494) 대에서부터 중종(재위 1506~1544) 대에까지 전염병이 돌고 흉년이 이어졌다. 그래서 살 방도를 찾아 대다수 제주인들은 대마도, 중국 해랑도에까지 숨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였으니 중앙정부로서는 제주도 방어 및 원활한 준마 공급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해결책으로 내놓았던 것이 1629년(인조 7년)출국금지령이었다. (p. 시 38-39/ 론 154-155) (홍기돈/ 문학평론가 · 가톨릭대 교수)

 

  7) 말 매매가 금지되자 제주인들은 말을 밀도살하여 그 부산물을 팔았는데, 부산물을 팔다가 관에 검거된 이들이 '우마적牛馬賊'이다. 우마적으로 낙인 찍힌 이들은 평안도로 강제 이주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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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귤림의 꽃들은 누굴 위해 피었나』 에서/ 2023. 10. 31. <시작> 펴냄

  * 한경용/ 제주 김녕리 출생, 2010년『시에』 신인상 수상, 시집『빈센트를 위한 만찬』『넘다, 여성시인 백년 100인보』『고등어가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