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탕과 베개
김륭
가만히 끌어안아보는 베개가 갓난아기처럼 웃는 날이 있습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듯, 요양병원에 누워계신 당신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나는 지금 당장 내가 우는 걸 보고 싶다고 말하려던 참입니다.
당신 없이 견뎌야 할 노후 걱정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끔씩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씁니다. 갓난아기처럼 웃는 베개를 끌어안고 울었던 어느 밤으로부터 고아가 된 나는 한 발짝도 떠날 수 없게 되었다고
투명인간처럼 밤을 걷습니다. 당신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잠을 썰고 있습니다. 한때의 달콤했던 잠을 딱딱하게 접은 각설탕처럼 앉아 입 안 가득 달이 쑨 죽을 머금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나의 베개가 된 것은,
나는 정말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무언가를 망연히 바라보는 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들어가듯
각설탕처럼 앉아있는 당신의 잠을 끌어안고
갓난아기처럼 다가올 울음을 미리 걸어보는, 그렇게 착한
베개가 있습니다
-전문(p.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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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가을(91)호 <신작시> 에서
* 김륭/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시 부문 &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동시 부문 등단, 시집『나의 머랭 선생님』 등, 청소년시집『사랑이 으르렁』, 동시집 『내 마음을 구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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