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부분
삼포시대, N포시대라니!
강정화/ 시인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 前略···
세계의 역사는 언제나 같은 방향과 모습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는 밤이 있고 낮이 있듯이 빛나는 영광과 그늘진 어둠이 수시로 자리를 바꾸면서 인류의 역사는 이어져 간다. 한 나라 안에서도 멸망과 재건을 반복하듯이 말이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이천 년 대 초에는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언어가 의식을 잠식해 가듯이 주어진 현실을 부정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11년 '직장'과 '결혼'과 '출산'이라는 세 가지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는 의미의 신조어 삼포시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따라 하던 것이 차츰 새로운 의미를 더 보태며 5포 7포 9포 마침내 '다總'의 의미로 해석되는 'n포시대'까지 그 부정적 의식은 더욱 확장되어갔다. 'n포시대'는 인생의 대부분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로, 젊은이들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까지를 모두 포기한다는 매우 절망적이며 섬뜩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뿐인가. 국민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지표를 보게 될 때는 나라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한 당혹감과 절망감까지 느끼곤 했다. 반만년 역사 가운데 가장 찬란하게 꽃피는 우리의 문화가, 한류가 판을 치기 시작한 가장 자랑스러운 오늘날에 <N포시대>와 같은 말을 듣게 되다니!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기한다는 자아에 대한 무방비의 이 비장함을 어떻게 치유해 가야 할 것인가?' 이것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로서 당시의 안타까움을 담론으로 삼았던 적이 여러 차례 있다.
오늘 이 문제를 다시 꺼내놓고 문학인으로서의 소명을 생각해 본다.
문학인이라면 우리 사회에 숨어든 문제의식을 찾아서 여러 방향으로 탐구하고 사유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문제에 걸맞는 가치를 발견하여 허당이 없는 세계를 제시해 주는 것이 우리 문학인들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우리 문학인들은 '나'를 넘어서 동시대인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하므로 그들과 함께 어우렁더우렁 높은 곳으로 올라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고 그 세계를 그려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p. 24)
··· 後略···
* 블로그 註/ 위 글에서
"삼포시대, N포시대"를,
'삼포세대, N포세대'로
겹쳐 이해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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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3-9월(655)호 <권두/ 김옥애 아동문학가_대표작> 에서
* 김옥애/ 전남 강진 출생, 197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 197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장편동화집『그래도 넌 보물이야』『봉놋방 손님의 선물』『추성관에서』등, 동시집『내 옆에 있는 말』『일 년에 한번은』『하늘』『숨어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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