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국수(掬水)/ 이은화

검지 정숙자 2023. 10. 27. 02:18

 

    국수掬水

 

    이은화

 

 

  달을 품고 걸어본 적이 있다

  달의 면은 늘 붉은 이유로 생각은

  자주 충혈 되었다

 

  사는 동안 안전한 직장과

  꽃밭과 아늑한 방을 가져본 적 없는

  세월 속 사소한 기쁨마저도 불안한

  안개로 내려앉았다

 

  우리라고 믿던 이들은 여러 얼굴을

  가진 이유로 웃음과 돈 뒤로 숨곤 했다

 

  늦은 깨달음을 다독이면 달의 면이

  쉽게 붉어졌다

 

  함께 걸었으나 혼자 남은 안개 숲

  명치 끝 멍울을 풀기 위해

  절창을 피우던 계절을 품은 적이 있다

 

  움켜쥐려던 물들은 빠져나가고

  몸 안에는 

  뭉클한 달들만 떠 있어

  가끔 회전문에 갇혀 사라질 때가 있다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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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3-여름(114)호 <이 계절의 신작시 1> 에서

  *  이은화/ 2010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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