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掬水
이은화
달을 품고 걸어본 적이 있다
달의 면은 늘 붉은 이유로 생각은
자주 충혈 되었다
사는 동안 안전한 직장과
꽃밭과 아늑한 방을 가져본 적 없는
세월 속 사소한 기쁨마저도 불안한
안개로 내려앉았다
우리라고 믿던 이들은 여러 얼굴을
가진 이유로 웃음과 돈 뒤로 숨곤 했다
늦은 깨달음을 다독이면 달의 면이
쉽게 붉어졌다
함께 걸었으나 혼자 남은 안개 숲
명치 끝 멍울을 풀기 위해
절창을 피우던 계절을 품은 적이 있다
움켜쥐려던 물들은 빠져나가고
몸 안에는
뭉클한 달들만 떠 있어
가끔 회전문에 갇혀 사라질 때가 있다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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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 2023-여름(114)호 <이 계절의 신작시 1> 에서
* 이은화/ 2010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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