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문병 다니는 일/ 민왕기

검지 정숙자 2023. 10. 27. 02:49

 

    문병 다니는 일

 

     민왕기

 

 

  요즘 뭐 하며 지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저 문병 다닌다고 한다

 

  병이 온 첫날엔 참이슬 서른 잔으로 안부를 물었고

  일주일 되던 날엔 맥주 두 병으로 문안을 했다

 

  달포가 지났을 땐 맥주 서너 병으로 인사를 다녀오고

  무슨 병인지 모를 만큼 시일이 지났을 땐 술 석 잔 붓고 말았지만

 

  오랜 병을 구하려는 일도 줄어 가끔 맥주 한 병 사다가

  입술에 닿는 거품들을 후루룩 소리내어 들이켜 보기도 한다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 이제 다 지인들 문병 가는 일이다

 

  아파 보이는 사람이나 아파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모두

  소주나 막걸리 같은 것을 놓고 앉아서 제 속에 술 털어 넣는일

 

  그저 산책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밥 한 번 먹자는 말도 모르는 병을 서로 조용히 묻자는 이야기다

       -전문(p. 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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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3-여름(114)호 <이 계절의 신작시 2> 에서

  * 민왕기/ 2015년 『시인동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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