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건달바/ 이령

검지 정숙자 2023. 10. 18. 02:22

 

    건달바

 

     이령

 

 

  결국에 나는 수미산 자락에서

  칠보 무더기를 가지고도 밥을 빌어먹을 사람이다

 

  세상이 무더기라면 세상이 없듯

  별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별이 그냥 거기에 있는 거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별들의 공복을 이 적멸의 허기를

  어떤 비유로 달래야 하나

 

  일단 반짝이는 것은 내가 아니다 별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셈을 치며 나는 자주 별자리를 탐했지만, 정작 빛나는 것들의 배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사餓死하진 않았다 궤도를 서성이다 사라지는 별들의 부스러기가 고봉으로 진설되는 밤, 내일 죽은 내가 오늘을 앓으며 어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없는 내가 자꾸만 커져가는 나를 다독이는 밤, 우렁우렁 깊어간다

      -전문(p.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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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토포스』 2023-여름(2)호 <신작시> 에서

  * 이령/  2013년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문학상, 시집 『시인하다』『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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