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슬픔
박장
기억나지 않는 나를 붙들고
앨범에 담긴 그날을 펼치면
낯익은 골목 그를 들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 대문을 나서네
눈코입이 분명치 않은 내가 보이고
말릴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엄마는 자꾸 손을 뻗네
빨간 천 두른 아버지 위로
오빠는 흙을 뿌리고
엄마는 봉분처럼 엎드려 우리는
똑바로 선 사진이 없네
얼굴이 없네 울음이 없네 그날
카메라를 보는 눈이 없네
사람들이 돌아가고 수저 놓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아무도 텔레비젼을 켜지 않는 어느 토요일 밤에 슬픔은 시작되었네 시도때도 없이 왔네 우두커니 찾아왔네 일기장 속에 퍼질러 앉았네 꿈에서처럼 언제나 측면이었네
컷과 컷 이어붙이면 그날은 움직이려는지
소리가 나려는지
아무리 복습해도 기억은 살이 빠지고
기록은 달릴 준비가 돼 있고
-전문(p. 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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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토포스』 2023-여름(2)호 <신작시> 에서
* 박장/ 2023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나비는 날개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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