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
조현석
이른 새벽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 부음訃音을 받고
깨어나지 않는 잠, 꿈속인 듯
억울하고 슬퍼서 잠시 운다
친구와 후배들에게 메시지 찍으려는데 손목과 팔이 떨리고 손가락 끝마저 힘이 빠진다 눈물이 가린 작은 자판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자음과 모음이 따로 찍히며 자꾸 오타만 난다
뚝뚝 눈물 떨어진 액정화면
손가락 끝이 눈물 위에서
휘청휘청 미끄러질 때마다
불효의 멍이 짙게 번진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임종도 못한 채 부음을 받은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음과 모음이 따로 찍히"는 "오타"를 애써 바로잡으며 눈물로 아비의 부음을 전한다. 이 시를 쓰는 순간 시인도 고통스러웠겠지만, 시를 읽는 독자도 고통스럽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갔거나 닥쳐올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共感을 넘어 통감痛感하게 된다. 이런 시는 아리고 맵다.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맛 이전의 통증이듯이, 매운 시는 시가 아니라 시 이전의 절규이다. 아버지에 대한 회한과 원망으로 시퍼렇게 멍든 자의 절규이다. 자식의 애끓는 절규를 뒤로 하고 육신의 형상이 사라지는 데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p. 시 88/ 론 102)/ (김남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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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차마고도 외전』에서/ 2023. 8. 26. <북인> 펴냄
* 조현석/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에드바르드 뭉크의 꿈꾸는 겨울 스케치』『불법,···체류자』『울다, 염소』『검은 눈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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