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41
정숙자
뱃머리 돌리려는 듯 귀뚜리들 노 젓습니다. 높이 뜬 달 하도 푸르러 온 힘 짱짱히 기울입니다. 질러가자고- 질러ᄀᆞ자고- 엄동이 아닌 봄 언덕으로. 했으나 며칠 새 칼바람 날려 그 많던 귀뚜ᄅᆞ미 날개를 잃고, 한두 올 가까스로 들려옵니다. 귀또르 귀 또···르, 귀잇 또르르···.
(1990.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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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익무해百益無害, 거실에서 커튼을 여는데 우연히도 돋아난 볕뉘입니다.
백해무익百害無益, 두 개의 글자를 바꿨을 뿐인데요, 의미는 극과 극이죠.
의식에서 잠재의식으로, 거기서 무의식으로ᄁᆞ지 내려가 정착했던가 봅니다.
책에 대하여 (해체한 치약 상자 안쪽에) 가둬놓은 낙서를 들춰볼까 합니다.
“경건한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책은 읽을 수 없다. 구겨진 일상이 정리됐거나 가라앉은 자신을 만나야만 책은 꽃일 수 있다.”
애써 칠십에 이르도록 글을 챙기고 바라본 배경에는, 그러한 분위기에 싸이는 정중동, 소요유逍遙遊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백익무해. 책에 관한 이 말은 글자끼리 서로 자리를 바꿔 저에게 보낸 선물이 아닐까요? 아니라면 책이 저에게 보낸 사랑일지도.
-전문(p. 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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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람』 2023-가을(11)호 <poem & poetry/ 신작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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