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平灣 1
강경호
술항개
重船이 떠나갈 때면
바닷가 절벽 위 가마는
연기 폭폭 퍼지르며
먼 바다로 떠나가곤 하였다.
이 땅의 백성들이 떠나가고
최가, 박가, 손가는
주인처럼 터를 채우고
馬家는 무덤 몇 송이만을
동백꽃으로 우거지고
파도소리로 머물렀다.
그리움처럼
금빛 햇살이 함평만을 내려비춰
쉽사리 잊혀질 파도 소리는 아니고
모래밭엔 꺠어진 기왓장과 해당화가
푸른 울음으로 흩어졌다
마포 가는 배
법성포 가는 배
썰물처럼 떠나가고
만선 조깃배
밀물처럼 밀려오면
깃 터는 황새의 목 빼는 울음 소리
그리움은 파도가 되고
영혼 깊숙이 찰랑찰랑 파도 소리만 들리고
- 시집 『언제나 그리운 메아리』, 샛별, 1987, p_111, (전문)
▣ 자연의 수사학/ 2. 민중적 언어(발췌)_강나루/ 문학평론가 · 시인 · 수필가
강경호 시인은 어린 시절 마을 앞바다에서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성장하였다. 배고픈 시절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함평만의 끝자락인 술항개酒浦는 매우 번성하여 고기잡이배들이 많았다. 항구에 만선의 배가 들어오면 그곳에 즐비한 술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술항개에 중선重船이 들어오고 떠나갈 때면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옹기를 굽는 가마에서 몇 날 며칠 동안 "연기 폭포 퍼지르며/ 먼 바다로 떠나가곤 하였다." 한때 번성했던 시인의 마을은 여전히 큰 마을로 오래전에 그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최가, 박가, 김가, 손가"가 오늘은 주인이 되어 마을을 이루었다. 이 마을에서 살았던 '馬家'는 "무덤 몇 송이만을/ 동백꽃"처럼 피어있을 뿐 흔적조차 없다. "금빛 햇살이 함평만을" 그리움처럼 내리비추지만, "모래밭엔 깨어진 기왓장과 해당화가" 쇠락한 이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푸른 울음으로 흩어"져 있을 뿐이다. 시인의 고향은 '해창海倉'으로 조선시대 조세를 거둬들여 서해 바닷길을 통해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옮기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포 가는 배/ 법성포 가는 배"로 인해 흥했던 이 마을은 이제 "썰물처럼 떠나가고" 함평만에서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만선 조깃배/ 밀물처럼 밀려"와도 "깃 터는 황새의 목 빼는 울음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옛날의 영화가 사라진 함평만을 생각하면 "그리움은 파도가 되고/ 영혼 깊숙이 찰랑찰랑 파도 소리만 들"릴 뿐이다. 쓸쓸한 함평만의 풍경을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p. 시 163-164/ 론 16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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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나루_강경호 시 연구 『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에서/ 2022. 9. 30. <시와사람> 펴냄
* 강나루/ 1989년 서울 출생, 2020년『아동문학세상』으로 동시 부문 & 2020년『에세이스트』로 수필 부문 & 2020년 『시와사람』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감자가 눈을 뜰 때』, 에세이집『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 동시집『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 연구서『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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