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에 가면
최진자
연인이 생기거든 신포동에 와 보세요
잠방이에 배었던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더욱 짠 바다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에서 마음을 열어 바다를 보세요
동창을 만나거든
키네마 담벼락으로 들리던 '벤허'의 전차 경주와
동방에서 울리던 '대전차군단'의 군화 소리를 찾아보세요
바다와 하늘의 문이 있고, 레일이 눈부신 곳
파도 소리 들으려 조곤조곤 얘기하는 곳이고요
옛 그림자 상처 날까 뒤축 들고 걷는 데입니다
풍경이 오십 년 전인 것은
부두 노동자들의 힘겨웠던 삶을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뱃고동 소리 듣거든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주세요
이곳은 개항지로 근대유물이 바지락처럼 널려 있는 곳
근대식 공원과 박물관, 기상대, 실내 공연장, 등대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백 개가 넘는 현대의 길목이었다는 걸 아시나요
어머니 혈관 같은 골목을 돌아 나와
카페 마고에서 커피 향과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면
숨결이라도 남기고 싶을 겁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위의 작품에 등장하는 신포동은 알려져 있듯이 개항 이후 최초로 도시화된 지역으로 근대적인 역사, 교육, 문화의 중심지였고, 현재도 역시 자유공원, 신포시장, 신포 문화의 거리 등 상업중심지역으로 기능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공원, 박물관, 공연장 등이 설치된 '현대화의 길목'으로 개항과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인은 유물과 풍경의 이면에 놓인 '땀방울', '상처', '힘겨웠던 삶' 등에 주목하길 바란다. 때문에 문장의 종결어미로 '와 보세요', '찾아보세요', '잡아주세요'라는 청유형이나 '아시나요' 등의 의문형을 사용하는데, 이는 텍스트 안의 수신자는 물론 텍스트 밖의 독자, 그리고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신포동의 풍경이 갖는 이면적 의미를 이해하길 바라는 태도를 함축한다.
한편 이번 시집은 시인의 경험과 기억에 바탕을 둔 상상의 서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시인의 고향이 인천이었다는 개인사적 경험과도 관련된다. (p. 14-15/ 론 103-104) (김진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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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신포동에 가면』에서, 2018. 10. 25. <도서출판 달샘> 펴냄
* 최진자/ 경기 김포 출생,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하얀 불꽃』//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입선, 집문당 기획실장 역임, 최진자 서화전(경인미술관), 제3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수상(2014),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2017),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추천작가(2018), 서상만 시비 씀(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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