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경인철도 외 1편/ 최진자

검지 정숙자 2023. 5. 6. 02:24

 

    경인철도 외 1편

 

    최진자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팔십 리 길

  쌍둥이 레일이 나란히 누웠으니

  철길로 다닐 물건이 궁금한데

 

  미국제 모걸(mogul)탱크기관차가 움직이던 날

  멀리서 누에가 꿈틀꿈틀 쇠똥구리 뿔처럼 솟은

  기적소리 천지를 진동하고 연기 하늘을 뒤덮는다

 

  대포 소리에 놀랐던 가슴 또 뛰어 몸을 숨긴다

  공룡의 등뼈가 이어진 듯

  영욕의 세월을 아버지같이 일한 철도

 

  아득히 멀지만 어제 같은 일

  기차를 타고 큰집에 가려고 철교를 지날 때

  꽁꽁 언 한강 위에서 낚시는 이색풍경

 

  기차 머리 난간에 하복 입고 매달린

  인하학원의 학생들

  다닥다닥 하얀 나비 나방이 되고

 

  하늘을 나는 속도에 맞게 전철이 생기고

  모든 철도는 1호선에서 출발점이다

  복선에 직행 특급이 있고 출퇴근 시간엔 2분 간격으로 빠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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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산성

 

 

  섬 강화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천혜의 요새 온몸에 상처의 흔적들

  발톱이 뽑히고 날개가 꺾였을지라도

  새살이 돋고 솜털이 다시 나는

  팔백 년 전 39년간 고려의 왕궁

  몽골의 침략을 버티느라 힘이 고갈되어도

  민족문화의 자랑인 팔만대장경 조판으로

  민족정신을 모아 지탱하고

  병자호란으로 산성 남문은

  청군에 짓밟히는 수모와 눈물

  미국과의 광성보 전투의 신미양요

  어재연 대장과 전군이 전사하는 굳센 의지

  프랑스가 침범한 병인양요

  외규장작 천 권의 책 중 359점 약탈과 몽땅 소실된 책

  서문에서는 일본군의 강제적인 강화도조약으로 

  36년간의 식민지 생활

  겹겹이 쳐놓은 무당거미의 거미줄 같은

  들추고 싶지 않은 우리의 아픈 기록

  섬 강화는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  

  어루만지고 되새겨야 할 거대한 역사 책

     -전문(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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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신포동에 가면』에서, 2018. 10. 25. <도서출판 달샘> 펴냄

  * 최진자경기 김포 출생,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하얀 불꽃』//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입선, 집문당 기획실장 역임, 최진자 서화전(2009, 경인미술관), 제3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수상(2014),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2017),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추천작가(2018), 서상만 시비 씀(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