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시접/ 서이교

검지 정숙자 2023. 2. 28. 02:13

<2023, 시산맥 신춘문예 수상작> 中

 

    시접

 

    서이교

 

 

  꿰매 놓은 그늘이 쏟아진다

 

  쥐고 있던 길이 땀을 놓자

  지나온 시간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이사를 하고 창문에 맞춰 커튼을 잘랐다 잘려 나간 자리에 실을 뽑아 홀매를 치고 반은 서랍에 넣어두고 남은 것은 그늘에 걸었지 화단에 심어 놓은 자두나무가 서서히 말라갔다 바람이 불면 금이 간 마당이 비틀거렸고 비가 오면 태풍이 불듯 방 안까지 물이 들이쳤다 그럴 때면 없는 볕을 찾아 빈방을 만들고 각자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커튼처럼

 

  중심인지 경계인지 모를 길을 걷다가 부은 다리를 끌고 집으로 가는 길, 별들이 달의 살빛으로 둘러앉으면 두고 온 자두나무가 몸을 흔들고 서랍에 넣어 둔 커튼이 꿉꿉한 냄새를 내고 손톱 밑의 그늘은 더 깊이 숨곤 했다

 

  해진 가슴에 올을 주워 시접을 댄다

 

  구겨질 때마다 빛났던 침묵이

  맞닿은 주름에서 일어서고

  늘어난 너비만큼 침묵도 가난도 이해되는 폭이 생긴다

 

  오늘도 비가 온다

 

  흙이 뿌리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엉킨 뿌리가 흙을 잡아주고있다

  말라가는 자두나무에는

  반복되는 고요가 저의 심장을 더 멀리 가게하고

  커튼 안쪽에는 끝내 자라나는 생활이 있다

 

  그런 손이 있다

    -전문(p. 57-58)  

 

   * 본심_ 백학기(문학뉴스) 이혜미  정현우(시산맥)

   * 예심_ 지관순  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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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산맥』 2023 - 봄(53)호 <2023년도 시산맥 신춘문예 수상작> 에서

  * 서이교(본명, 서미숙)/ 전남 순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 연출 감독, 캘리그래퍼, 2023년 문학뉴스 & 시산맥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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