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이령
느닷없이 출몰한다 골목은
골목을 만나 벽이 된다.
벽은 도처에 있다 벽은
벽을 벗어나야 길이 된다.
길은
층층 그늘이 마수걸이하는 상가 지나 노브랜드가 창의적인 브랜드로 거듭난 햄버거 가게 건너 세상에나 여기서도 카카오 뱅킹이 가능하다고? 첨단 붕어빵 리어카 너머 두릅나무 가시에 걸린 족제비 사체가 건너편 무인 카페 로봇을 향해 칸칸 슬쁨* 내음을 방사한다 그러니까 여기가 우리들의 오늘, 불가 촉 생의 밀실과 광장의 풍장이구나!
살고 싶다의 어원인 밀실과 살아간다는 어법인 광장이
줌 인, 줌 아웃 되는 지금
밀실이 광장의 통로라는 걸
익숙하다는 건 능숙하게 길들여져 간다는 걸
턱과 입에 마스크를 두 개나 낀 행인이 증명한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 속에서
사람이 사람과 사람 속에서
느닷없이 시나브로 벽이 되고 길이 된다
클라우드 클릭, 밀실과 광장이 빽빽한 지금 여기는
호흡 긴 골목이다
-전문(p. 158-159)
* 슬쁨: 슬픔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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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3 - 봄(53)호 <신작시> 에서
* 이령/ 201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시인하다』『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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