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내가 읽은 미당 시「귀촉도」를 중심으로(전문)/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3. 1. 1. 03:05

| 내가 읽은  미당 시 |

 

    歸 蜀 途

 

    未堂 徐廷柱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三萬里.

  흰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

 

  신이나 삼어줄ㅅ걸 슲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는 이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 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가락 눈이 감겨서

  제피에 취한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육날메투리는, 신중에서는 으뜸인 메투리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였느니라. 귀촉도 는, 행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솟작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하고 子規라고도 하는 새 가, 귀촉도···귀촉도··· 그런 發音으로서 우는 것이라고 地下에 도라간 우리들의 祖上의때부터 들 어온데서 생긴 말슴이니라.

 

 

 다시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신이나 삼어줄ㅅ걸/ 「귀촉도」를 중심으로_ 정숙자/ 시인

  위의 시 「귀촉도」는 1983. 5. 25. 초판 발행(민음사)에 이어, 1984. 1. 30. 2판 발행 『徐廷柱 詩 全集』 69쪽에 실린 그대로를 옮긴 것이다.

  필자는 2015년 6월에 <(주)은행나무> 발행된 『미당 서정주 전집』 외에도, 「귀촉도」가 실린 시집 몇 권을 더 가지고 있으나 굳이 40년 가까이 묵은 ‘민음사’ 발행본을 택하여 여기 옮긴 까닭은, 선생님께서 그 당시 손수 교정도 보셨을 테고, 우리가 지금 읽기에는 좀 불편함이 없지 않으나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지금은 쓰지 않는 사이시옷이라든가), 말의 맛을 최대로 살리기 위해 고심하셨을 터이기에 그 컨텍스트(context)까지를 느끼며 읽어보고자 함이다.

 

  서정주는 자신의 시어에 대해 ‘구슬리는 말’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현실 생활에서 각 개인들이 느끼고 살기에는 불만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말을 ‘굴린다’고 할까? ‘구슬린다’고 할까? 꼭 합리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비꼬거나 우회해서 아이러니나 유머를 만들어 내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시어들이 전라도 방언 특유의 그 ‘구슬리는’ 측면에 관계되어 있으며, 자신의 탐구 대상으로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밝혔다

  (현대시학19921월호, 김춘수와 서정주의 대담 인용. ‘이 부분은 필자의 배우자가 군에 재직 시 경기대 94학번 이태호병장의 졸업논문인데, 필자가 시인임을 알고는 한 부 주었기에 지금껏 간직한 것으로, 감명 깊은 대목이라 재인용 했음을 필히 밝힌다.’)

 

  본래 「귀촉도」는 단독 작품으로 발표되기 전 崔琴]桐의 시나리오 <愛戀譜>에 인용 · 활자화되었다. 그 줄기는 망자에 대한 한 여인의 사무치는 정을 노래한 데 있다.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이런 구절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 정은 매우 절실하고 가락 또한 훌륭하다. (未堂과의 對話, 文學思想(1972. 12), p. 352. , 이 작품이 단독 활자화된 것은 春秋(1943.10)를 통해서다.(김용직 한국현대시인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2000.3./ 680~681)

 

  1930년대 후반기의 한국문학사에서⟪詩人部落⟫이 한 山脈에 비유될 수 있다면 徐廷柱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이 치솟은 묏뿌리에 해당된다. 그는 단순한 묏뿌리라기보다 핏빛 용암을 분출하는 불기둥의 산이었다. 그 불길은 우리 문단 안팎의 충격이 되기에 족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용암은 우리 문학과 문화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金容稷 著 『韓國現代詩史 2』(한국문연, 1996.2/ 48쪽)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특히 미당의 시가 마음에 절실히 안겨 왔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시로는 역시 「국화 옆에서」였는데, 그 이유는 한순간의 파토스(pathos)적 편린片鱗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가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시간을 한 문장에 담아낸 압축미 또한 흔치 않은 매력이었다. 어린 나이에 무엇을 깊이 알았을까만, 봄, 소쩍새, 울음, 국화꽃을 한 줄에 꿰어, 일상에서 발생하는 고비 고비마다 견딤과 위안, 그리고 희망을 건네주는 말씀으로서의 진주요 구슬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읽은 미당 시’의 한 편을 「귀촉도」로 택했느냐 묻는다면, 필자의 나이가 그럴만한 때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갚지 못한 은혜가 날이 갈수록 사무쳐오는 까닭이다. 70을 딱 절반으로 접은 나이쯤에 뵈온 미당! 그로부터 다시 서른다섯 해를 넘겼으니 숱한 애환 속에서 늘상 떠올리던 「국화 옆에서」보다는, 이제 「귀촉도」를 외우고 다시 새겨 읽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 아닐까. “흰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 신이나 삼어줄ㅅ걸 슲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는 이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어느 한 구절 마음에 아프지 않은 데가 없고, 맺히지 않는 구석이 없다. 등단을 알리는 추천사는 물론, 풋것임에도 불구하고 1시집 · 2시집의 서문을 써주시고, 마지막까지도 정신적 의지가 되어주신 스승님께.

  필자는 그 무엇으로도 보답하지 못한 채 “다시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로 홀연히 떠나가신 것이다. 문단이라는 곳, 시 세계라는 것, 아무것도 알지 못한 어리보기로서…, 원고료를 드릴 줄도 모르고…, 부질없이 희어 버린 머리털을 바람에 맡기는 오늘의 쓸쓸함이야 이를 데가 없다, 올해는 코로나 감염병까지 걸려 격리 기간에 초파일이 지나가고 말았다. 해마다 조계사에 들러 영가등 하나 달아드리며 엎드리곤 했는데, 그조차 못했으니 더더욱 허전하다. 스승님께서야 이 모자란 것에게 무엇을 바라실까마는, 필자는 이제 ‘한 송이의 국화꽃을 지우기 위해/ 가으내 귀뚜리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화답하는 작금이다.

  열여섯, 중학교를 졸업한 해 어느 달 밝은 밤에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리며, 그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생각했었다. 감히 꿈꾸지는 못하고 그저 바라보며 공상으로 그치는 몽상이었다. ‘어느 훗날 서정주 선생님을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지은 시를 보여드리고, 칭찬도 받는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가상만으로도 그 밤은 그득하고 황홀하고 행복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필자는 시를 만지고 외우고 나름 빠져 있었으므로. 그런데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 필자는 미당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그것도 미당이 창간한 『문학정신』 제27호, 간기刊記에 발행인/편집인이 서정주로 찍힌 마지막 호에.

  돌아보면 그런 순간순간이 필자에게는 기적의 체험이었다. 어린 시절 한순간 스친 꿈이 현실로 이어지다니!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중 한 폭인 ‘천지창조’가 떠오르곤 한다. 손가락의 스침으로 생명력이 부여되는 광경이야말로 불교에서 일컫는 인연일 것인데, 그 얼마나 아슬아슬한 찰나인가. 가족도 이웃도 아닌 우주 공간에서의 만남이 아닌가. 1988년 필자 등단, 그리고 2000년 12월 스승님 타계. 『문학정신』 제27호도 겨울호였으므로 정확히 12년 동안의 존경이요 신뢰였으며 은혜였다. 고향에서 자랄 때 어른들 말씀이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라더니 스승님의 그늘은 약비한 필자의 생애를 비추고도 남음이 있다.

  어느 해 정월, 세배드리러 갔을 때, “올해 몇이지?” 물으셨다. 필자는 마흔이라고 사뢰었던 것 같다. “아니 설 쇠는 데만 쫓아다녔나? 웬 나이를 벌써 그렇게 먹었어?” 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시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시고 책상 주위로 몇 걸음 옮기시며 “참 좋은 나이다!” 나지막이 독백처럼 하셨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 맑고 조용하고 조금은 슬픈 분위기를 이해할 듯도 싶다. 자신이 그 나이를 멀리 돌아보지 않고서야 “참 좋은 나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설 쇠는 데만 쫓아다녔나?” 말씀은 역시 미당만의 어법이요, 그 자체로 영롱한 시어詩語가 아닐 수 없다.

  귀촉도」를 앞에 놓고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니 “눈물 아롱아롱”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미묘하다. “아롱아롱”은 ‘글썽글썽’에 가까운 형용일 텐데 미당은 흔히 쓰이는 말을 제치고 ‘아롱아롱’을 들인 것이다. ‘글썽글썽’보다는 좀 더 여리고 금방 떨어뜨릴 것 같은 데다가 색채를 아우르며 음악적이기까지 하다. 필자는 한때 ‘아롱아롱’을 어감이 가벼운 부사라고 느낀 적도 있다. 감히! 말이다. 미당의 시어는 곱고 단단하고 아름답다. 살아계실 때 ‘선생님, 정말 고생하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알아드리지 못한 일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른은, 더욱이나 대가大家는 그저 바위인 줄만 알았던 나, 얼마나 어리석  었는지! (p. 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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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당문학2023년 상반기(15)<내가 읽은 미당 시> 에서

  * 정숙자/ 1988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공검 & 굴원』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