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와산문』 2022-여름호, 시인특집 /신작시 1편, 대표시 1편/ 시인의 사색(전문)>
<신작시>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2
정숙자
당신의 아기인 줄도 모르고 저는 그들을 잡으며 놀았었군요. 투명한 날개와 가느다ᄅᆞᆫ 몇 마디의 몸을 미루어, 그이도 천사인 줄을 어느 날 문득 깨우쳤습니다. (19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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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그들, 잠자리만큼이나 허공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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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얘기를 들려줬을 때 조카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모, 잠자리한테는 날개를 모아 쥐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다 부서졌을 거예요. 잠자리 날개는 수평으로만 펼치도록 태어난 거잖아요? 그런데 완전히 뒤로 세워서 한 잎처럼 모아쥐었다는 건 참으로 가혹한 일이었어요. 그런데도 놓아주면 사뿐히 날아갔지요. 너무 무서워서, 너무나도 아팠지만 있는 힘을 다해 날아갔던 거예요. 그 후 그가 얼마나 더 살았을지, 어디서 어떻게 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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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조카는 몇 년 후 의사가 되었습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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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공검空劍*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 『딩아돌하』 2018. 봄호
* 공검空劍 : 허虛를 찌르는 칼 (필자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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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색>
아폴론과 곡비哭婢
아폴론이 음악과 시가詩歌를 다스리는 신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의술醫術도 이 신의 직능이라고 할 때, 때로는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 점에 대해서, 시인이기도 하고 또 의사이기도 했던 암스트롱(존 암스트롱. 스코틀란드 시인. 1709~79)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음악은 모든 기쁨을 높이고 모든 슬픔을 가라앉히며,
온갖 병을 몰아내고, 모든 괴로움을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현자賢者들은
의약과 음악과 시가詩歌의 불가분의 힘을 숭배했다.
- 『그리이스 로마 神話』 불핀치/손명현 역/ 1975. 동서문화사/ 39쪽.
한편 예언의 신, 음악과 문예를 맡은 신으로 또한 청춘과 생명을 상징하는 신격神格을 갖추고 있었으니 이 면에서 광명의 신으로 통했고, 이미 전 5세기경부터는 태양신으로까지 숭배된 것 같다. 로마 시대에는 아폴론 곧 태양신太陽神으로 확정되고 만 정도다.
그리고 의료생활 역시 아폴론 신의 직분이었다.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도 그 아들이라는 것이다.
- 『그리스·로마 神話』 강봉식 편역/ 1961년 초판-1980년 // 재판발행. 을유문화사/ 85쪽.
이상 옮겨 적은 바와 같이, 각기 다른 두 권의 내용을 보더라도 아폴론이 시가詩歌와 의술醫術의 신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어 보인다. 게다가 우리의 인식 차원에서도 시인이라 하면 곧바로 곡비哭婢를 떠올릴 정도로 타인의 슬픔을 대신 울어주고,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는 사람으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본질에 있어서 시인이란 동서고금이 다를 리 없고 또 변할 리 없는, 다시 말해 인간애가 지극한 인간의 표상이기도 한 셈이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그들은 존경의 상징인 선비로 불렸으며 요즘에도 흔히 ‘문인’이라 하지 않는가.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으며 시를 꿈꾸고, 무한 동경한 나머지 시인으로서의 한 생이 저물어가고 있다. 외국 시인은 접어두고라도 한용운 홍사용 서정주 유치환···, 소월 이상 목월···,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별빛을 쬐며 펜촉을 가다듬었다. 현대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새로움~ 새롭게~를 추구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자식들과도 여가를 누리지 못했(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현재 시각. 2022년 4월 10일 14시 44분. 올해 들어 어젯밤까지 읽고 노트한 잡지만 헤아려도 49권인데, 과연 그 속에 ‘곡비’에 값할 만한, ‘의술’에 비견할 만한 시를 몇 편이나 접했는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아폴론에게도, 그 옛날의 곡비한테도 뭐라 말씀드려야 하나. 이게 진짜 시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나? 자문하고, 나 자신부터 <황조가> <구지가> <정읍사>부터 다시 파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시가 더 탄탄하고 다채롭고 고매한 작품으로의 도약과 결과가 따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기억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 장소이며 시간이냐. 등기필증이 없어도 내 소유요, 납세 고지서 반 쪼가리도 날아들지 않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가 바로 거기다. 시공간을 몸소 가로지르지 않고도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고, 누군가 ‘나가라’고 엄포를 놓지도 않는 거기. 나 자신의 의식과 의지만 살아 있으면 얼마든지 묵어도 되는 거기. 예전의 나의 집이었으며 현재의 집이기도 한 공우림空友林, 벗이 없는 집이자 공기를 벗 삼는 이 시절에서 홀로 더불어 오늘 또 하루를 건너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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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산문』 2022-여름(114)호 <시인특집 ②>에서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뿌리 깊은 달』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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