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박수현
요 며칠 앵두 따러 다녔어요
아파트 산책로 한 그루 앵두나무가 나를 잡아끌데요
앵두가 익을 무렵인 줄 몰랐는데
가지 찢어지게 영글어 바알갛게 쫑알거리데요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다고 뾰로통 입술을 내미네요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눈길 하나 건네지 않았겠지요
별 볼 일 없는 나 같은 사람이나
앵두에 눈 맞추며 가슴 콩닥거리겠지요
손가락을 디밀어 빗질하듯
가지 밑 다닥다닥 붙은 앵두알을 훑었지요
탱글한 앵두알에 금방 손바닥이 흥건해지는군요
앵무鸚鵡들 허천나게 탐낸다는 그것을
혓바닥에 올려 조밀조밀 궁굴려봅니다
늦봄 한나절 잠시라도
한 마지기 그늘에다 한 모숨 초록바람까지 더해
늦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얕은 잠속을 자박자박 서성이다 멀어진
당신의 발자국 소리도 다가오는 듯합니다
저 바알간 앵두알을 삭여 앵두주를 담글까봐요
숫돌처럼 무거운 봄날이 다 가고 나면
당신 한잔 자시러 오실래요?
하 독毒한 앵두주
앵두나무 기슭에 매달린 하늘 무심히 보듯
무심히 한잔 자시러 오실래요?
-전문(p. 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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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시대』 2022-가을(26)호 <신작시> 에서
* 박수현/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복사뼈를 만지다』『샌드 페인팅』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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