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앵두/ 박수현

검지 정숙자 2022. 12. 22. 02:38

 

    앵두

 

    박수현

 

 

  요 며칠 앵두 따러 다녔어요

  아파트 산책로 한 그루 앵두나무가 나를 잡아끌데요

  앵두가 익을 무렵인 줄 몰랐는데

  가지 찢어지게 영글어 바알갛게 쫑알거리데요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다고 뾰로통 입술을 내미네요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눈길 하나 건네지 않았겠지요

  별 볼 일 없는 나 같은 사람이나

  앵두에 눈 맞추며 가슴 콩닥거리겠지요

  손가락을 디밀어 빗질하듯

  가지 밑 다닥다닥 붙은 앵두알을 훑었지요

  탱글한 앵두알에 금방 손바닥이 흥건해지는군요

  앵무鸚鵡들 허천나게 탐낸다는 그것을

  혓바닥에 올려 조밀조밀 궁굴려봅니다

  늦봄 한나절 잠시라도

  한 마지기 그늘에다 한 모숨 초록바람까지 더해

  늦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얕은 잠속을 자박자박 서성이다 멀어진

  당신의 발자국 소리도 다가오는 듯합니다

  저 바알간 앵두알을 삭여 앵두주를 담글까봐요

  숫돌처럼 무거운 봄날이 다 가고 나면

  당신 한잔 자시러 오실래요?

  하 독한 앵두주

  앵두나무 기슭에 매달린 하늘 무심히 보듯

  무심히 한잔 자시러 오실래요?

     -전문(p. 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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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시대』 2022-가을(26)호 <신작시> 에서 

  * 박수현/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복사뼈를 만지다』『샌드 페인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