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박언휘의 만남(질문 하나)/ 저 눈빛, 헛것을 만난 : 조창환

검지 정숙자 2022. 12. 23. 02:15

 

    저 눈빛, 헛것을 만난

 

    조창환

 

 

  링컨콘티넨탈 리무진이 서서히 움직인다

 

  장중하고 위엄 있는 흐린 그림자도 길게 움직인다

 

  검은 버스 안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 맞추지 않는다

 

  로스케를 만난 피난민처럼 기가 질린 표정으로 침묵한다

 

  장의 행렬이 남긴 무거운 자취를 따라

 

  유기견 한 마리가 퀭한 눈빛으로 허공을 훑어본다

 

  저 눈빛, 헛것을 본 모양이다

 

  헛것을 만난 목숨들은 기가 질려있다

 

  한 생애 땀 흘려 헛것을 따라다닌

 

  지나간 목숨 하나만 평안히 누워있다

 

  아무 것도 아니군, 티끌만도 못 하군

 

  링컨콘티넨탈 리무진에 누워있는 헛것이 혼자 중얼거린다

       -전문(p. 117)

 

  박언휘: 문단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조창환: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시집을 계속 내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집 한 권이 한 시기의 정신적 매듭이 되고, 매듭을 묶은 이후에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러한 자기번민과 자기탐색이  없는 시인은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지요.

  자신만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개성적인 시적발상과 문체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유행에 민감하거나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려 하거나 평론가의 비평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일은 자기 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문단에서 하찮은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려 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시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학상을 맏는다든지, 문학단체의 대표가 된다든지 하기 위하여 손 비비고 허리 굽히는 시인은 비웃음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시의 품위. 시의 격조를 위해서는 시인의 문화적 교양이 바탕이 됩니다. 인접예술에도 관심을 가져야하고 문화적, 지성적 실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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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시대』 2022-가을(26)호 <박언휘의 만남/ 조창환 시인에게 듣다> 에서 

  * 조창환/ 1945년 서울 영등포구 출생, 197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빈집을 지키며』『나비와 은하』『저 눈빛, 헛것을 만난』『라자로마을의 새벽『허공으로의 도약』 『띠보다 붉은 오후』 등  

  * 박언휘/ 경북 울릉도 출생, 2019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시집 『울릉도』, 저서『박언휘 원장의 건강이야기』『내 마음의 숲』『미래를 향한 선한 리더십』『안티에이징 명인 박원휘 의사가 들려주는 안티에이징의 비밀』『청춘과 치매』『세상을 바꾼 여성 리더십』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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