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육추기, 육추기/ 황경순

검지 정숙자 2022. 12. 16. 00:21

 

    육추기, 육추기

 

    황경순

 

 

  주말농장에서 주인처럼 매실나무에 사는

  긴꼬리딱새의 육추기育雛期,*

  새소리가 시끄럽다

  인기척을 느끼고 더욱 요란해진다

  하필 농막 가까운 곳에 둥지를 지었을까?

 

  조막만한 새끼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자지러지는 소리, 소리

 

  일부러 문을 닫고

  자리를 피했다

 

  날지 못하는 새끼 한 마리를

  어미새, 아비새가

  둥지 대신 다른 나무에 옮겨 놓고서야 조용하다

 

  새들도 저렇거늘

  어린 제 자식을 죽여 놓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화면들이 클로즈업 된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저절로 익히는 부모 역할,

  그것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엄격한 자격증을 주고 싶다.

  그래도 안 되는 생명 이하의 인간들에게는

  인공 육추기育雛器 하나씩 안겨 주고 싶다.

    - 전문(p. 228-229)

 

  * 육추기育雛期: 조류가 부화한 새끼를 키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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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2-여름(174)호 <2000년대 시인 신작시> 중에서

  * 황경순/ 2006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거대한 탁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