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시간 속에서
오정국
나는 이 풍경 속에서 일찌감치 꺼내온 것이라
꽃의 시간,
나무의 시간,
흙의 시간을 뒤적거렸지
숨이 차오르도록 헐과 할을 반복하면서
새벽녘에 잠을 깨면
벽시계를 보지 않았어
냉장고 불빛에 얼굴을 펼쳐놓고
쩌억쩌억 금이 가길 기다렸지
얼음덩어리의 푸르스름한 숨결을 따라
내 핏줄 굽이치던 노래가 있었다고 믿었던 거라
현관문이 열리면
도어락 저편으로 사라지는 4608#처럼
액정화면의 타임캡슐에 봉인되긴 싫었어라
나는 이 풍경 속에서
진흙 바닥을 뒹굴고 춤추고 노래했지
나의 기억은
폐지와 의류, 쇠붙이로 분류되고
유리병과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는데
분리수거는 일주일이면 한번
토요일, 토요일을 끝없이 중얼댔어
나는 이 풍경에 휘감기고 뒤섞이고 흩날렸지
비바람에 흩어지고
폭설에 휩쓸리며
악천후의 후일담으로 남겨진 것이라
컨테이너에 말라붙은 칡덩굴처럼
전봇대 귀퉁이의 입간판처럼
-전문-
▶ 주체의 시간과 근원을 향한 초자연적 상상력(발췌)_ 이재연/ 시인
첫 연을 마지막에 놓고 위의 시를 읽으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물성이 지배하는 일상성 끝에서 시인은 언명한다. "나는 이 풍경 속에서 일찌감치 재를 꺼내온 것이라" 재는 형체가 사라지고 남은 마지막 흔적이다. 불의 흔적이다. 불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듯이 흙이 되어지는 모든 것들, 흙은 그렇게 끝이 되기도 하고 다시 처음이 되기도 한다. 이때의 흙은 물성이 범람하는 현대사회의 대응으로서 흙이다. 일부 종교적 해석을 떠나서도 흙은 생명의 근원이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컨테이너에 말라붙은 칡덩굴"이나 "전봇대 귀퉁이의 입간판"과 같은 풍경 속에서 "일찌감치" 재를 꺼내온 화자는 이미 시작과 끝의 그 너머를 더듬는 화자이리라 "숨이 치오르도록" 우리 삶의 소모성과 불모성에 근접해 그 불모성에 대적하는 일이 "일상의 풍경" 속에서 "흙의 시간을 뒤적거"리는 것이다. 이는 모든 물질 에너지의 근원인 흙을 통해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의 궁구이기도 하다.(p. 시 76-77/ 론 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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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2-겨울(27)호 <신작소시집/ 리뷰> 에서
* 오정국/ 1956년 경북 영양 출생, 198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모래무덤』『내가 밀어낸 물결』『멀리서 오는 것들』『파묻힌 얼굴』『눈먼 자의 동쪽』『재위 얼굴로 지나가다』등, 시론집『현대시 창작시론 : 보들레르에서 네루다까지』『야생의 시학』등
* 이재연/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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