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정현_'원서헌'에서 오탁번 시인을 만나다/ 이름 : 오탁번

검지 정숙자 2022. 12. 13. 02:50

 

    이름

 

    오탁번

 

 

  어느 날 그냥 찾아온 손 하나이

  내 이름이 본명이냐 뜬금없이

  방울 탁! 울타리 번!

  또박또박 글자 풀이를 해주었다

  엄한 선비였던 할아버지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손자 한 놈 더 있다고

  내 이름 지어놓고 돌아가셨는데

  1943년 한여름 초저녁에

  정말 내가 태어났다고

 

  서른 살에 4남1녀 막내로

  날 낳으신 어머니는

  영양실조로 젖이 말라

  눈물로 간을 한 미음으로

  막내를 살리려고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세 살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어머니 홀로 어찌 견디셨을까

  우주 한가운데 버려진 나는

  애총에나 버려질 목숨이었나

 

  그런데, 명줄 안 끊기고

  예까지 용히 왔다

  그날 뜨악한 손이 가고 나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자전에서 내 이름 다시 찾아보았다

  앗! 이게 뭐야?

  방울 탁, 울타리 번 말고

  어마한 뜻이 더 있다

  독을 바른 창, 탁!

  휘장揮帳이 있는 수레, 번!

  깜짝 놀라 틀니 빠질 뻔했다

  독 바른 창을 잡고

  휘장을 친 수레를 탄다?

 

  나는 곰곰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했다

     탁뻐나

  니 가는 곧 어드메뇨?

     -전문-

 

   '원서헌'에서 오탁번 시인을 만나다(발췌)_ 이정현/ 시인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198번지에는 '원서헌'이 있다. 모교인 '백운초등학교'의 애련분교가 폐교된 후 시인은 그곳에 문학관을 꾸몄다. 훗날 정년퇴임 후 이곳을 생의 종착점으로 삼고자 했다. "살면서 나는 별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해요. 봄이 되어 정원 꽃밭을 돌아보면서 나는 정말로 새싹들의 소리를 듣고, 목련나무를 볼 때도 어린 아기의 옹알이 같은 소리를 들어요."라고 할 만큼 자연 오케스트라의 장이 바로 이곳 '원서헌'이다.

  인터뷰를 위해 우선 내가 사 온 양념불고기를 볶고, 술잔 두 개와 김치를 놓았다. 휘리릭! '술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p. 시  91-92/ 론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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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2-여름(174)호 <연재 8    이정현의 시인 만세> 에서

  * 이정현/  강원 횡성 출생, 2007년『수필춘추』로 수필 부문 & 2016년『계간 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살아가는 즐거움』『춤명상』『풀다』가 있고, 시전집『라캉의 여자』, 산문집『내 안에 숨겨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