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오탁번
어느 날 그냥 찾아온 손 하나이
내 이름이 본명이냐 뜬금없이
방울 탁鐸! 울타리 번藩!
또박또박 글자 풀이를 해주었다
엄한 선비였던 할아버지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손자 한 놈 더 있다고
내 이름 지어놓고 돌아가셨는데
1943년 한여름 초저녁에
정말 내가 태어났다고
서른 살에 4남1녀 막내로
날 낳으신 어머니는
영양실조로 젖이 말라
눈물로 간을 한 미음으로
막내를 살리려고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세 살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어머니 홀로 어찌 견디셨을까
우주 한가운데 버려진 나는
애총에나 버려질 목숨이었나
그런데, 명줄 안 끊기고
예까지 용히 왔다
그날 뜨악한 손이 가고 나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자전에서 내 이름 다시 찾아보았다
앗! 이게 뭐야?
방울 탁, 울타리 번 말고
어마한 뜻이 더 있다
독毒을 바른 창槍, 탁!
휘장揮帳이 있는 수레, 번!
깜짝 놀라 틀니 빠질 뻔했다
독 바른 창을 잡고
휘장을 친 수레를 탄다?
나는 곰곰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했다
탁뻐나
니 가는 곧 어드메뇨?
-전문-
▶'원서헌'에서 오탁번 시인을 만나다(발췌)_ 이정현/ 시인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198번지에는 '원서헌'이 있다. 모교인 '백운초등학교'의 애련분교가 폐교된 후 시인은 그곳에 문학관을 꾸몄다. 훗날 정년퇴임 후 이곳을 생의 종착점으로 삼고자 했다. "살면서 나는 별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해요. 봄이 되어 정원 꽃밭을 돌아보면서 나는 정말로 새싹들의 소리를 듣고, 목련나무를 볼 때도 어린 아기의 옹알이 같은 소리를 들어요."라고 할 만큼 자연 오케스트라의 장이 바로 이곳 '원서헌'이다.
인터뷰를 위해 우선 내가 사 온 양념불고기를 볶고, 술잔 두 개와 김치를 놓았다. 휘리릭! '술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p. 시 91-92/ 론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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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2-여름(174)호 <연재 8 이정현의 시인 만세> 에서
* 이정현/ 강원 횡성 출생, 2007년『수필춘추』로 수필 부문 & 2016년『계간 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살아가는 즐거움』『춤명상』『풀다』가 있고, 시전집『라캉의 여자』, 산문집『내 안에 숨겨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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