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한국시문학상 수상작 > 中
엉겅퀴
곽정효
어릴 적 처음 보았던 엉겅퀴꽃들은
보일 듯 말 듯한 빛을 싣고 다니며 나를 불러내곤 했었다.
대개는 편안한 그늘이라고는 없는 황량한 들판이나 강가였다.
뜯어보지도 않은 편지, 버려진 사랑,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신음 소리
저렇게 슬픈 말도 있었구나, 가슴이 아려
어른이 되어서도 지우지 못하는 말과 함께였다.
이상한 건 그것들이
아무리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났어도
다음 해엔 좀 더 넉넉한 품으로 돌아와
거친 땅과 바람을 달래곤 하는 것이었다
나 말고도 그곳을 찾는 다른 발길들이 많았는데
어지간한 눈물, 애물단지들을 가지고 와도
한결 가벼워져 돌아서고
억울하고 황당한 말이 불끈거릴 때도
찾아와, 엉겅퀴와 함께 몸을 흔들다 가는 것이었다.
물도 시작은 불일 수 있구나
불도 끝은 물일 수 있구나
엉겅퀴들이 하늘 담는 모습, 꽃잎 펴는 몸짓을 지켜보다
엉겅퀴의 불을 얻어 들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엉겅퀴의 말들은
다시 엉겅퀴가 되거나, 할미꽃이 되거나
초록이 되어 산으로 들로 흩어졌다.
-전문(p. 120)
* 심사: 강우식 박제천 이길원 장순금 정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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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2-여름(174)호 <2022년 한국시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 곽정효/ 1990년『월간문학』시 부문 & 2010년『문학나무』소설 부문 등단, 시집『소리의 바다』『음악미나리 상상』, 장편소설『두물머리 사람들』『하느님과 씨름한 영혼』, 단편집『평화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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