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이창하
노인보다 훨씬 나이 많은 집이 있었네
세월에 간신히 버티며 밤마다 어린 노인을 감싸주었고
어둠이 배설될 때마다
달님은 초라한 등짝으로 연착륙했는데
그때마다 뒤란의 대나무도 고개를 끄덕이며 졸기 시작했네
때때로
석양이 이른 자취를 감추는 날이면
바람이 그윽하게 노래를 불러주거나 오래전
숲으로 돌아간 아내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별들도 걸음을 멈추었네
어느 날 노인의 문밖을 나서자
도회지에서 떠돌던 아들이 환생이라도 한 듯
야생 고양이 몇 마리가 바지 깃을 문질렀는데
그때마다
삭정이 같은 손으로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었고
작은 영혼은 노인의 손을 받아들였네
대나무들이 흔들리는 달밤엔
그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노인은 점차 달님이 되어가고 있었네
-전문(p. 102-103)
● 시인의 말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온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이웃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께서 부지런히 겨울나기 준비를 하고 계신다.
불현듯 오래전 부모님이 생각났다.
멀리 선산에 나란히 누워 계시는 두 분이 몹시 그립다.
단풍이 제법 많이 물들었다 싶었는데, 벌써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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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2-겨울(84)호 <신작시> 에서
* 이창하/ 2010년『현대시』로 시 부문 & 2021년『시와 사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감사하고 싶은 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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