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 아침/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22. 12. 12. 01:09

 

    이 아침

 

    오세영

 

 

  활짝 펴 아름답다고 감탄하지 마라.

  꽃은

  가장 어둡고 아픈 고통의 그 절정에서 봉오리를

  터트리는 것이다.

    -전문(p. 49)

 

  ● 시인의 말  

  꽃들의 말은 향기다.

  꽃들은 귀가 아닌 우리들의 코에 대고 속삭인다. 무슨 말을 하는지 고개 숙여 코로 향기를 맡아 본다. 은은하게 가슴을 적시는 향기, 당신이 그립다는 말, 코 끝을 톡 쏘는 향기,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 상큼하게 얼굴을 간질이는 향기, 매화는 싸늘한 향기로 당신을 훈계한다. 독버섯은 매운 향기로 당신을 저주한다. 꽃들은 향기로 말하는 것이다.

  말만이 말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의 말만이 아닌 사물의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하늘이 들려주는 말을, 땅이 들려주는 말을, 꽃과 새와 별이 들려주는 말을······ 왜 파도는 밀려왔다 쓸려가는지를, 왜 숲은 잎을 피우고 또 떨어뜨리는지를 , 왜 강물은 쉬임 없이 흘러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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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 2022-겨울(84)호 <신작시> 에서

  * 오세영/ 196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랑의 저쪽』『바람의 그림자』『북양항로』 등, 학술서적『시론』『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