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에는 약 냄새가 나고
전동균
내 입속엔 얼어붙은 눈
내 발목엔 진흙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 뿐이에요
바람 속을, 한밤 같은 햇빛 속을
수많은 그림자들을 품으며 버리며 지나왔죠
한 모금의 커피
새벽의 담배
그것들이 나의 신이었다고 차마 말할 순 없어요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
말이 있으니
나는 지푸라기, 녹슨 칼, 펄펄 끓는 물,
다시는······ 다시는······
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끝없이 기도를 배반하는
내 손은 차고 입술은 뜨거워요 내 피에는 약 냄새가 나요
세상이 나에게 가르친 건
밥그릇 앞에선 고개를 숙이라는 것, 하지만
고개가 발바닥에 닿아도 세상은 털끝 하나 바뀌지 않았죠
내 눈엔 모래들
내 발목엔 엉겅퀴 가시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를 위로할 수밖에 없죠
아주 먼 데서 아주 환하게
사람들은 펄럭이고
오늘은 나는
무덤 옆에서 춤을 추는 소나무들 속으로 걸어가요
-전문(p. 59-60)
● 시인의 말
이상한 일이다. 내가 나고 자란 경주 삼릉의 소나무들은 햇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 본래의 속성을 배반한 채 무덤 쪽으로 휘어져 있다. 바람이 강하거나 많은 곳이 아닌데도 햔결같이 춤을 추듯 뒤틀린 몸으로. 이따금 그 소나무들이 떠오르곤 한다. 죽음을 지키는 춤꾼들. 그이들이 무덤 옆에서 춤을 추는 자세를 얻기까지 어떤 내력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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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2-겨울(84)호 <신작시> 에서
* 전동균/ 1986년『소설문학』으로 시부문 등단, 시집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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